사회적 이슈

"초1 교육비, 고3만큼 든다니"…부부는 아이 안낳기로 했다

Shawn Chase 2019. 3. 5. 03:55

데모 크라이시스 2부

매경-신한은행 출산인식 빅데이터 공동분석

  • 연규욱 기자
  • 입력 : 2019.03.04 17:58:48   수정 : 2019.03.05 00:00:23
  • ◆ 눈앞에 닥친 인구감소 / 다시 뜯어보는 저출산 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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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벌이 직장인 이재호 씨(41)는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둘째를 갖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이씨 아내는 "방과 후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학원비가 본격적으로 들어갈 텐데 돈 생각은 안 하냐"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말다툼이 반복되자 이씨는 "내년에 진급해 월급이 오르면 마지막으로 제안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결혼을 하면 대개 아이를 낳기 마련`이라는 생각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효한 사회통념이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98명으로 떨어졌지만 배우자가 있는 여성 출산율을 뜻하는 `유배우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합계출산율(1.68명·2016년)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게 학계 분석이었다. 이제는 더이상 `결혼=출산` 공식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매일경제와 신한은행 빅데이터센터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 또한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로는 교육비 부담이 꼽혔다.

    4일 매일경제신문과 신한은행 빅데이터센터 공동 분석에 따르면 자녀 출산 의향을 묻는 질문에 `높다`고 답한 기혼 가구 비중이 지난해 37.2%로 나타났다. 2017년 이뤄진 같은 조사 결과(59.8%)에 비해 22.6%포인트 감소한 것이다. 이는 특히 `출산 의향이 높다`고 응답한 미혼 가구 비중(46.4%)보다도 낮은 수치다. 이는 결혼과 동시에 오히려 출산에 대한 의지가 약화된다는 뜻이다. 2017년 조사에서는 출산 의향이 높은 미혼 가구 비중이 50.5%로 기혼 가구 비중(59.8%)보다 낮았다.

    자녀 출산 의향이 `없다`고 답한 20~44세 기혼 무자녀 가구를 상대로 그 이유를 물으니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생활하고 싶어서`(35.9%)와 `자녀 양육비 부담`(25.4%)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10명 중 6명이 경제적 압박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한 부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유독 큰 경제적 압박을 느꼈을까. 신한은행 빅데이터센터는 전국 20~64세 남녀 1만명을 대상으로 월평균 소비·지출 내역을 소득분위 및 자녀 유무·수·학령기로 나눠 심층 분석했다.

    그 결과, 소비지출 항목 중 교육비(보육비 포함)가 유자녀 가구의 출산 의지를 가장 심하게 억누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자녀 가구 월평균 교육비 지출은 45만원인 데 반해 무자녀 가구는 1만원에 불과했다. 전체 지출 항목 중 차지하는 교육비 비중은 유자녀 가구가 15.4%, 무자녀 가구가 0.6%였다. 출산과 동시에 전에 없던 소비가 대규모로 발생한 것이다.

    20대 기혼 유자녀 가구가 교육비로 평균 19만원을 쓰는 데 비해 30대는 35만원, 그리고 40대는 68만원을 쓸 정도로 가파른 상승폭도 보여줬다. 아이가 있는 40대는 교육비를 식비(60만원)보다도 많이 썼다.


    소득수준과 함께 자녀를 학교 단위로 구분했을 때 교육비를 가장 많이 쓰는 건 고등학생 자녀를 둔 소득 5분위(상위 20%) 가구로 월평균 115만원이 들어갔다. 전체 월 소비(461만원)의 25% 수준이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1분위(하위 20%) 가구는 한 달 교육비로 21만원을 썼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고소득·저소득 여부에 관계없이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교육비가 이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나고, 이 금액이 자녀가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득 5분위(상위 20%)는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교육비가 월평균 57만원(미취학 자녀)에서 97만원으로 급증했다. 4분위(31만원→71만원), 3분위(30만원→60만원), 2분위(18만원→41만원)는 두 배 이상 확대됐고, 1분위도 14만원에서 21만원으로 증가했다. 교육비는 자녀가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더 늘긴 하지만 증가폭은 크지 않았다.

    이는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돼야 본격적으로 사교육비가 증가한다`는 사회통념과 다른 결과다.

    이에 대해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장은 "영유아 시기에는 무상보육이 이뤄지면서 큰 비용 없이 자녀 돌봄 문제가 해결되지만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돌봄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돌봄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태권도·피아노 등 예체능 위주 학원을 보내는 데 사교육비가 들고 있다. 정부가 돌봄 기반 확충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의 교육비 지출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는 초고소득층인 5분위(상위 20%)를 제외하고는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보다 교육비 지출액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는 은퇴 시기가 다가와 가계소득이 줄어드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마강래 중앙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한국 사회는 입시 교육, 즉 대학을 통해서만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는 획일화된 사회여서 사교육 분야에서 낭비가 심하다"며 "교육 경쟁이 심화돼 어린 나이로까지 내려가다보니 초등학생 사교육비가 급증하는 것"이라며 "사교육 경감은 결코 공교육 정책과 프로그램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데 보다 다양한 통로를 정부가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기 신한은행 빅데이터센터 본부장은 "저출산 대책은 감이 아닌 밀도 높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면밀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며 "요즘 청년이 말하는 `삶의 질`과 `일·생활 균형`에는 시간적 여유만이 아니라 그 시간에 쓸 돈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연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