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中, 김정은 열차 철벽 경호···흡연 촬영팀은 체포설·잠적설

Shawn Chase 2019. 3. 5. 03:31
중앙일보] 입력 2019.03.04 01:00 수정 2019.03.04 15:53

26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전용열차가 베트남 동당역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중국웨이보 캡처]

26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전용열차가 베트남 동당역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중국웨이보 캡처]

26일 오전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핑샹 국경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전용열차가 지나고 있다. 신경진 기자

26일 오전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핑샹 국경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전용열차가 지나고 있다. 신경진 기자

가로등 하나 없는 암흑. 단둥(丹東) 도심에서 20여㎞ 떨어진 진탕루(金湯路)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전용 열차가 지나갈 철로를 스마트폰 지도 앱으로 찾아 기다렸다. 멀리 열차 소리가 들렸다. 지난달 23일 오후 10시 37분(현지시간). 기차가 오후 9시 18분 압록강 철교에 진입한 뒤 1시간 19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단둥 역사에서 환영식을 가졌거나 기관차를 교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91년 전 군벌 장쭤린 폭사한 선양
철로 지나는 도로 차량 통제
중·베 국경 핑샹, 호텔 예약 안 받아
김 위원장 흡연 촬영 기자 체포설

 전조등을 켠 기관차와 검은 커튼을 내린 객차가 눈앞을 지나갔다. 불이 켜진 객차는 뒤 칸 4~5량에 불과했다. 열차 통과에 걸린 시간은 1분 20여 초. 직선 코스임에도 속도는 시속 60㎞ 정도에 불과했다.
 
 흥미로운 광경이 열차가 떠난 뒤 펼쳐졌다.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철로 주위로 손전등 불빛이 보였다. 철로 옆에 잠복했던 경찰이 삼삼오오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목격한 숫자만 십여 명. 중국은 사고를 미연에 막기 위해 인적 없는 철로 변까지 철벽 경호를 제공했다.
지난달 2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전용열차가 정차한 단둥역사 앞을 경찰특공대가 지키고 있다. 신경진 기자

지난달 2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전용열차가 정차한 단둥역사 앞을 경찰특공대가 지키고 있다. 신경진 기자

 단둥시의 열차 경호는 완벽했다. 이날 압록강 철교가 보이는 호텔과 고층 건물 창문의 모든 불이 꺼졌다. 시민들의 야간 산책 코스인 압록강 변 공원은 오후 8시 전후로 통행을 금지했다. 강변 공영주차장 주차도 막았다.
 
 9시가 넘어서자 압록강에
경비정이 나타났다.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강변의 시민을 이동시켰다. 열차 통과가 임박하자 강변도로인 진장제(錦江街)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단둥역 주위는 경찰 특공대가 차량 진입을 막았다. 도심 철로 주위 도로마다 경찰 바리케이드가 목격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김 위원장 열차는 지난해 3월과 올 1월 압록강 북·중우의교(朝中友誼橋)를 건넜다. 통과 시간은 모두 오후 9시 이후. 단둥의 소식통은 “어둠을 틈타 위성이나 고공 정찰기에 노출되지 않으려는 의도”라며 “신변 경호를 중시하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단, 새벽녘에 건넜던 김정일 국무위원장과 달리 중국 측 환영 인사를 배려해 심야는 피한다는 설명을 보탰다.
 
 동북에는 열차사고의 선례가 있다. 1928년 6월 동북왕으로 불리던 군벌 장쭤린(張作林)이 철로 사고로 숨졌다. 장쭤린 특별열차가 지금의 선양(瀋陽)인 펑톈(奉天) 도심 황구툰(皇姑屯)에서 폭발했다. 일본 관동군 소행이었다. 장쭤린 폭사 사건은 만주사변과 전면적인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91년 뒤 김정은 열차가 선양시 인근을 지났다. 중국이 경찰력을 총동원해 경호를 제공한 이유다.
1928년 6월 지금의 선양시인 펑톈 도심에서 일본 관동군이 설치한 폭탄으로 파괴된 동북 군벌 장쭤린(張作林)의 전용열차. [사진=바이두]

1928년 6월 지금의 선양시인 펑톈 도심에서 일본 관동군이 설치한 폭탄으로 파괴된 동북 군벌 장쭤린(張作林)의 전용열차. [사진=바이두]

 지난달 26일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과) 협상을 거쳐 교통보장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교통보장’은 철통 경호를 포함한다. 2004년 4월 북한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철로조차 100% 안전한 교통수단은 아니다.
 
 중국의 교통보장 규모는 컸다. 자유아시아방송(RFI)은 25일 하루 80편 이상이 일반 열차가 운행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SNS에서는 ‘김정은’ 세 글자가 들어간 게시물을 속속 삭제했다. 열차가 지나는 철로를 지나는 도로의 차량 통행은 모두 금지됐다. 중국 네티즌 원망이 속출했다.
 
 25~26일 중국-베트남 국경도시 핑샹에서도 준계엄 상태를 확인했다. 핑샹역 옆 시샹펑(喜相逢)국제호텔은 현지 공안 본부로 사용됐다. 호텔에 머물던 동료 기자는 강제 퇴실당했다. 철로 전망의 시내 모든 호텔 객실은 예약을 받지 않았다.
지난달 26일 새벽 중국 광시좡족자치주 국경도시 핑샹시 역사 앞을 군복을 입은 국경경비대와 경찰이 지키고 있다. 신경진 기자

지난달 26일 새벽 중국 광시좡족자치주 국경도시 핑샹시 역사 앞을 군복을 입은 국경경비대와 경찰이 지키고 있다. 신경진 기자

 공안 감시를 피해 핑샹북역 인근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밤을 새웠다. 새벽 4시쯤 분위기가 급변했다. 형광 조끼를 입은 공안이 나타났다. 국경수비대 군복 차림의 공안도 보였다. 베트남 국경에서 16㎞가량 떨어진 핑샹 시내는 사흘 전 단둥으로 돌변했다. 철로 주위 5m 간격으로 경찰·공안과 명판을 찬 사복 공무원이 경비에 돌입했다. 이슬비 내리던 새벽 어둠 속 시내 전체가 경찰로 가득 찼다. 국경 쪽으로 이동했지만, 철로가 보이는 길가에는 어김없이 경찰이 서 있었다.  
 
 중·베 국경인 핑샹 유이관(友誼關) 옆 1898년 청불전쟁 당시 전사한 청나라 병사 만 명을 묻었다는 만인분(萬人墳) 옆에 가까스로 자리를 발견했다. 이곳 역시 곧 번호판 없는 군용 SUV가 사주경계를 섰다. 오전 7시 17분 핑샹 시내에 김 위원장 열차가 들어섰다는 속보가 타전됐다. 1시간 40분쯤 지난 오전 9시 노란색 바탕의 붉은색 둥펑 3058호 기관차가 끄는 암녹색 김정은 전용 열차가 눈앞을 지나쳤다. 사흘 전 단둥 교외보다 열차 길이가 짧았다.
 
 이번 중국의 교통보장에 허점도 노출됐다. 26일 새벽 김 위원장이 난닝역에 내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일본 민영 방송사 카메라에 찍히면서다. 북한 정부가 중국에 엄중히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난닝역 주위에 가림막이 설치됐고 경비가 강화됐다. 
 
 김 위원장을 찍은 카메라 중국인 크루는 이후 자취가 묘연하다. 체포설과 잠적설이 겹친다. 과거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통역이던 장류청(張留成) 대외연락부 남·북 담당 처장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장 처장은 2005년 후 주석의 방북과 2006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시 통역 내용을 한국에 유출한 혐의로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북한 문제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다.
단둥·핑샹=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주석 열차에서 2148일 생활한 마오쩌둥
에어포스 원이 미국 대통령을 상징한다면 중국 최고 지도자의 상징은 1호 열차다. 주시좐례(主席專列)로 불렸던 마오쩌둥(毛澤東) 전용 열차는 제2의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 지도부 집단 거주지)였다. 1949년 3월 25일 베이징 입성부터 1975년 마지막 남순(南巡)까지 26년 간 마오는 전용 열차에 72차례 탑승했다. 총 2148일, 5년 10개월 23일을 열차에서 생활한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중국 주요 지도자의 전용열차 이용 현황

중국 주요 지도자의 전용열차 이용 현황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4~75년 마오쩌둥에게 전용 열차가 곧 거처였다. 2년 사이 9개월을 열차에서 지냈다. 주석 열차는 우한(武漢)의 동호(東湖)와 황저우(杭州)의 서호(西湖)를 자주 찾았다. 항저우만 43차례 찾았다. 1958년 당 정치국은 국가 지도자의 항공기 탑승 금지를 결정했다. 안전이 이유였다.
 
덩샤오핑은 51년부터 94년까지 총 78차례 전용 열차를 이용했다. 796일, 43년 재직 기간 중 2년 여 시간을 열차에서 보냈다.
 
1958년 북한 김일성 당시 수상의 베트남 우호 방문이 이번 김 위원장의 하노이 여정과 오버랩된다. 11월 21일 당시 안둥(安東·지금의 단둥)을 시작으로 28일 광저우까지 베이징과 우한을 거치는 여정이 인민일보 1면을 연일 장식했다. 12월 2일 하노이에서 항저우로 날아온 김일성은 상하이→우한→베이징을 거쳐 9일 국경을 건넜다. 20일 간 중국 전역을 열차로 누볐다.
 
하노이 북·미회담은 결렬됐다. 북한으로선 성과도 거뒀다. 마오쩌둥의 길을 걷는 시진핑 주석과 3대 세습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의 ‘후방-전방’ 관계를 1호 열차로 돈독하게 다졌기 때문이다.

[출처: 중앙일보] 中, 김정은 열차 철벽 경호···흡연 촬영팀은 체포설·잠적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