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김광일의 입] 엎어진 잔칫상, 문 대통령의 세 가지 잘못

Shawn Chase 2019. 3. 5. 02:51

김광일


입력 2019.03.04 19:00




지난 2월27일 업로드한 ‘김광일의 입’ 제목은 ‘트럼프·김정은 세 번째 만남도 있을까?’였다. ‘머피의 법칙’까지 말할 것도 없이, 정말 안 좋은 쪽 예감이 딱 맞아 떨어질 때가 있다. 특히 북한을 맞상대할 때 그렇다. 지난주 초에 하노이 회담을 이틀 앞두고 ‘통 큰 빅딜’, ‘스몰딜도 빅딜’,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금강산 관광’ 같은 온갖 장밋빛 얘기가 봇물을 이루고 있었지만, ‘김광일의 입’은 세 번째 만남이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처럼 ‘하노이 판’이 깨지고 말았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트럼프·김정은이 또 만나려면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운 허들을 넘어야 하고 시간도 필요하다. 정상회담은 원래 실패가 없는 법이다. 실무선에서 의제 설정과 협상이 끝난 뒤에 만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노이 미·북 서밋(summit)은 실패로 결론 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잘못은 핵탄두·핵미사일로 무장한 집단을 상대하면서 ‘응징 모델’과 ‘보상 모델’ 중에 균형을 잃고 ‘보상 모델’ 하나만을 끝까지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사용하고 있다. 핵무기는 꼭 발사해서 터뜨려야 사용하는 게 아니다. 북한 김정은은 핵무기를 ‘사용해서’ 트럼프를 싱가포르와 하노이까지 오게 했다. 김정은은 핵무기를 ‘사용해서’ 문재인 대통령을 대변인처럼 부리고 있다. 김정은은 핵무기를 ‘사용해서’ 체제 안정을 유지하고 천문학적 규모로 경제적 불로소득(不勞所得)을 꿈꾸고 있다. 북한은 세계 어느 핵무장 집단보다 성공적으로 핵무기를 이미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핵무장 잠재국들이 숨 죽여 북한 보상 모델을 지켜보고 있다.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의 몇 나라들, 이란과 중동의 아랍 패권을 꿈꾸는 국가들, 아프리카의 체제 불안 국가들이 그렇다. 모두 문 대통령의 대북 ‘보상 모델’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대북 ‘보상 모델’에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고집함으로써 핵확산금지조약 NPT 체제의 허상(虛像)을 확산시키고 궁극적으로 핵 확산을 부추겨 인류 평화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NPT 체제는 껍데기다. 인도 이스라엘 북한 파키스탄이 아직도 핵보유국이 아니라고 우기겠는가. 원래 NPT 체제는 안보리 이사국들도 언젠가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날이 올 것이란 가정 하에 만들어졌는데, 그날이 올 것인가. 문 대통령에게 묻는다. 지금 북한은 핵보유국인가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전략은 자체 모순을 안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기본적인 통일 방침은 ‘우리 민족끼리’ 할 수 있다는 북한 전략에 동조하고 앞장서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비핵화 협상 테이블은 ‘우리 민족끼리’가 아니라 ‘(미·북) 저들끼리’ 앉아서 하고 있다. ‘우리 민족끼리’의 판문점에 갔다가 ‘저들끼리’의 하노이 테이블을 기웃거렸다가 하다 보니 우리 집 처마에 불이 붙었는데도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게 되는, 해괴한 상황에 스텝이 꼬이는 것이다.

핵 협상은 카지노 판에 룰렛 게임 같은 것이다. 카지노 하우스의 원칙이 있다.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걸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철도·도로·대북경협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하고, 청와대 대변인은 성급하게 미·북 ‘종전선언’도 괜찮다는 발언을 했다. 마치 밥이 다되어 푸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했지만 결과는 ‘꽝’이었다. 문 대통령은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 머리를 걸고 있다. 판은 깨졌다는 가정 하에 지금은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가 아니라 북핵에 대한 ‘대응조치’를 짜야 할 때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이제 우리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잔칫상은 엎어졌다. 문 대통령 목소리가 외롭게 들린다.

미세먼지로 굴뚝 속 같은 하늘 밑에서 문 대통령은 미·북 결렬 다음 날인데도 "미국과 개성공단 금강산 재개를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이 날은 대통령이 미세먼지 관련 긴급 명령권이라도 발동해주었으면 했던 날이다. 숨이 막혀서 살 수가 없었다. 일주일 가까이 온 나라가 연막탄 같은 희뿌연 미세먼지에 갇혀서 어디 도망갈 데가 없다. 공기청정기나 마스크로는 어림도 없다. 이 나라를 뜨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는 지인도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단 한마디 말이 없다. 탈(脫)원전을 외친 정부를 원망하는 여론이 들끓는데 대통령은 한마디 대꾸가 없다. 미세먼지 발생 차량의 전면적인 운행 정지,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발전소와 공장시설의 잠정 중단 등을 강제로 이행하는 헌법 76조 긴급 명령권은 언제 써먹는 것인지 궁금하다. 미세먼지로 고통 받는 국민에게 한마디 위로의 말이 없다. 지금 대통령은 ‘대북 경협 자금을 떠맡을 각오’를 밝힐 때가 아니라 ‘미세먼지로부터 국민 생명을 지킨다는 각오’를 밝혀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의 셋째 잘못은 ‘빨갱이 프레임’을 꺼내들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문 대통령의 3·1 절 기념사를 들으면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 대통령은 일제가 항일독립 운동가를 탄압할 때 ‘빨갱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비슷한 맥락으로 빨갱이란 말을 무려 5번이나 반복했다. 역대 대통령 중에 공식 기념사에서 빨갱이란 속어를 쓴 첫 대통령일 것이다. 문 대통령의 느닷없는 빨갱이 운운은 정치적 목적이 있다. 수출까지 3개월째 내리막길인 어두운 경제 상황, 북한 비핵화의 협상 실패와 교착 상태, 이런 것들을 에둘러 돌파하려는 책략이다. 빨갱이란 말에 대한 청와대식 해석에 동조하면 내편이요, 반발하면 친일파로 몰아 부치는 프레임을 짜려는 것이다. 빨갱이란 표현을 지렛대 삼아 거꾸로 상대 진영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지금껏 빨갱이란 지적을 받았던 쪽을 확실한 내편으로 굳히고, 반대쪽을 철저히 쳐내는 전략이다. 항일독립운동가·민족주의자·진보진영·빨갱이, 이런 쪽을 억지로 하나로 묶고, 친일파·우파·보수진영을 다른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우기는, 대단히 위험한 편 가르기 게임을 하고 있다. 빨갱이는 역사의 지하실 속에 묻어둬야 하는 어두운 단어다. 그걸 대통령의 입으로 다시 끄집어냈다. 정치적 패착을 넘어서서 역사에 죄를 짓는 ‘빨갱이 발언’이 될 수도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4/20190304027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