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과연 김정은에게 시간은 있을까

Shawn Chase 2019. 2. 28. 20:59

류현정 기자


입력 2019.02.28 18:28 | 수정 2019.02.28 19:27


미·북 정상 간 단독 면담을 앞둔 28일 오전 9시. 협상에 임하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도널드 트럼프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서두르지 않겠다. 옳은 길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Speed’s not that important to me. No rush. We just want to do the right deal)"고 말했다. 이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나에게 시간이 중요한데…."고 말했다.

과연 김정은에게 시간은 있을까. 세계 최빈국 북한이 패권 국가인 미국 정상과 마주 보고 거래할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을까.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3800km 거리를 사흘간 열차를 타고 온 김정은은 회담 결렬로 이미 체면을 크게 구긴 상황이다.

국제 정치 전문가들은 정상 간 담판 기회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랜 기간 냉각기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 ‘스몰 딜’보다는 ‘노 딜’을 택한 트럼프…"北, 전혀 예상 못했을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오후 하노이 메리어트 호텔 기자회견장에서 제 2차 미북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미북 정상 회담이 파국을 맞은 데는 미국 국내 정치 상황이 심각한데도 김정은이 내놓은 협상 카드들이 이를 타개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비핵화 의지가 있었다"면서도 "북한이 제재 완화를 원했지만 우리가 원했던 것을 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여러가지 옵션이 있었으나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베트남으로 간 사이 미국 의회는 거의 대통령 탄핵 정국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이 27일(현지 시각)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폭로전을 이어갔던 것이다. 코언은 트럼프가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이메일 해킹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점, 성관계를 했던 포르노 배우에게 입막음용 돈을 지급한 것, 대선 기간에 사적 이익을 위해 트럼프 타워 개발을 추진한 것도 공개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트럼프 입장에서는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해서라도 협상을 결렬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와 상응 조치에 대한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국내외 소식통들은 북한 영변 핵시설 폐쇄의 대가로 종전 선언, 미·북 연락사무소 설치, 일부 제재 완화 등의 상응 조치가 있을 것으로 봤다. 이에 대해 대체로 ‘스몰 딜(작은 거래)’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가 ‘속도가 중요치 않다’라고 말한 것이 중요하다"면서 "지금 당장 결과를 만들기보다 미국의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더디더라도 확실히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본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그동안 북한은 성의 없이 실무 협상에 임했고,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것을 역이용해 더 많은 것을 받아내려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처했다"면서 "트럼프는 스몰 딜이라는 나쁜 거래보다는 노 딜(no deal)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 김정은, 앞으로 담판 기회 얻기 쉽지 않을 듯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 두 번 담판하는 기회를 얻었다.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4번 방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정부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한반도 문제를 외교 분야의 최우선 순위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러시아 극동연구소의 알렉산드르 제빈 북한연구센터장은 27일 보도된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 등이) 대대로 달성하지 못한 역사적 기회를 얻었다"고 평가했었다.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김정은이 역사적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다음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단독 회담을 앞두고 기자들 앞에 섰다/연합뉴스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의 정치적 시간표를 보면, 트럼프가 이제 북한 문제에 집중할 정치적 자산과 외교적 자산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2020년 미국 대선 정국이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북 정상회담을 재개할 물리적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트럼프가 계속 ‘서두르지 않겠다(no rush)’고 말한 것처럼 미국은 대외적인 도발만 없다면, 실제로 급할 게 없다. 경제 위기에 처한 북한이 급하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그동안 벼랑 끝 외교 전술을 펴왔고 실효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면서 "앞으로는 정상 간 담판보다 실무 협상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남·북·미 실무협의를 조기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회담 결렬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김정은과의 관계는 좋다"고 말해 대화의 불씨를 살려뒀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것은 끝이 아니다. 새로운 출발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낙관적"이라고 덧붙였다.

◇ 김정은의 다음 선택은…"비핵화냐, 버티기냐"

김정은은 지난해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집권 초기 내세웠던 ‘핵·경제 병진노선’을 과감히 접고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대내에 선언했다. 28일 ‘비핵화 준비가 됐느냐’는 하노이 취재진의 질문에 김정은은 "그런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오수용(경제 담당), 리수용(외교 담당), 김평해(인사 담당) 등을 베트남 유명 관광지와 산업단지를 견학시키며 경제 발전 의지를 과시하기도 했다.

노동신문의 김정은 위원장 베트남 방문 보도


하지만 김정은의 66시간 열차 이동, 24시간 이상의 현지 회담 준비, 10일 일정의 장기 출장 등이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김정은의 베트남 행보를 대대적으로 선전해온 공산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관영 조선신보의 후속 보도도 미궁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올 1월 1일 신년사에서 "나는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으며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미국이) 우리의 인내심을 오판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향후 김정은의 행보에 대해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회담은 연속성이 중요한데 (회담을 위한) 동력이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동안 북한 정치 행태를 봤을 때 미북 냉각 기간 동안 북한은 어떤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일단 버티며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한 교수는 "트럼프가 3차 정상 회담을 약속하지 않았는데, 이제 후속 회담을 하려면 북한은 더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북한은 제대로 된 비핵화 로드맵을 내거나 제재를 버티는 핵보유국으로 가는 기로에 와 있다"고 말했다. 핵도 어느 정도 보유하면서 경제도 발전하는 중간 지대의 옵션이 없어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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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28/20190228028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