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학
페루인들 인신공양까지 하게 만든 엘니뇨…올겨울 추위는?
2006년 엘니뇨 발생 상황을 보여주는 그래픽. 남미 쪽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바닷물 높이가 높아지고,수온도 상승한다. [사진 미항공우주국(NASA)]
겨울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맹추위가 닥쳤다. 8일 아침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11.4도까지 떨어졌다.
이번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지난가을에는 "여름 폭염이 심했던 해에는 겨울에 혹한이 닥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하지만 이 속설은 팩트체크 결과, 뚜렷한 근거가 없었다.
기상청도 지난달 23일 발표한 장기 예보에서 올겨울이 유난히 춥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또 내년 1월까지 엘니뇨가 약하게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달 28일 세계기상기구(WMO) 역시 내년 2월까지 약한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75∼85%라고 했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진 7일 아침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최근에는 엘니뇨가 미세먼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올겨울 한반도 날씨는 어떻게 될까. 엘니뇨가 발생하면 미세먼지 오염은 더 심해질까.
2015년 엘니뇨 상황. 적도 동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평소보다 높음을 보여준다. [사진 미해양대기국(NOAA)]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바닷물 표면 온도가 평소보다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평상시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 탓에 적도 태평양의 바닷물이 서쪽으로 밀린다.
바닷물이 밀려간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남미 페루 부근에서는 깊은 곳에서 차가운 바닷물이 솟아오른다. 바로 용승(湧昇, upwelling)이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 쪽 바닷물 높이는 남미 쪽보다 0.5m가량 높다.
엘니뇨가 발생하는 과정 [중앙일보 그래픽]
용승 현상이 약해지면 깊은 바닷물의 영양염류가 적게 올라오고, 식물플랑크톤 성장도 주춤해진다. 물고기도 적게 잡힌다.
차가운 바닷물이 올라오지 않으면서 동태평양 수온이 오르게 된다. 바로 엘니뇨 현상이다.
엘니뇨는 보통 2~7년 주기로 나타나며,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에 절정을 이룬다.
엘니뇨 감시구역(적도 부근 태평양의 붉은색 실선 부분) [자료 기상청]
이곳에서 바닷물 온도가 평상시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로 5개월 이상 지속할 때 그 첫 달을 엘니뇨의 시작이라고 본다.
엘니뇨와 정반대 현상인 라니냐(La Nina)가 나타나면 동태평양 표층 바닷물 온도가 낮아진다.
엘니뇨처럼 라니냐는 감시구역 바닷물 온도가 평상시보다 0.5도 이상 낮은 상태로 5개월 이상 지속할 때 그 첫 달을 라니냐의 시작이라고 본다.
라니냐는 ‘여자아이’라는 뜻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처음 공개한 엘니뇨의 내부 진행모습. 인공위성을 이용해 촬영한 사진으로 적도를 단면으로 한 태평양 바닷속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엘니뇨의 이동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97년 11월경의 모습으로 엘니뇨 물기둥은 동진을 계속, 중남미 인근 앞바다를 달구고 있다. [중앙포토]
오래된 산호에서 엘니뇨로 인한 온도 상승과 강수량 증가 사실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엘니뇨를 과학적으로 처음 규명한 것은 1923년 영국 수학자 길버트 토머스 워커였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40년 치의 기상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타히티 동쪽 남태평양 해역과 호주 다윈 서쪽의 인도양 해역 사이의 해수면 기업이 시소처럼 오르내리는 것을 발견했다.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갔다.
엘니뇨와 라니냐라는 반대 현상을 통해 태평양의 바닷물은 시소나 그네처럼 왔다 갔다 출렁거리는 셈이다.
지구의 열 순환에서 균형을 맞춰가는 자연현상이다.
그래서 워커는 이를 남방진동(Southern Oscillation)이라고 불렀다.
학자들은 보통 엘니뇨와 붙여서 엘니뇨-남방진동, 즉 ENSO라고 부른다.
한편, 지난 2011년 6월 미 항공우주국(NASA)은 그해 초부터 폭설·토네이도 등이 이어지자 이 새로운 기상 현상에 ‘라나다(La Nada)’라는 이름을 붙였다.
라나다는 스페인어로 ‘공백’이란 뜻이다.
그해 1월 기승을 부리던 라니냐가 갑자기 사라졌다. 라니냐가 사라지면 그 뒤를 이어 엘니뇨가 나타나는 것이 보통인데, 당시에는 엘니뇨도 라니냐도 없었다.
이러한 기후 요소들이 자취를 감추자 NASA 측이 이를 라나다라고 부른 것이다.
엘니뇨 두 가지 형태. 중앙태평양 엘니뇨와 동태평양 엘니뇨는 수온이 가장 많이 상승하는 구역(붉게 표시한 해역)이 다르다. [그래픽 예상욱 한양대 교수]
이에 따라 엘니뇨를 동태평양 엘니뇨와 중앙 태평양 엘니뇨로 구분하기도 한다.
중앙 태평양 엘니뇨의 경우 엘니뇨 모도키(Modoki, もどき), 즉 유사 엘니뇨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태평양 엘니뇨는 대략 3~8년 주기로, 중앙 태평양 엘니뇨는 2~3년 주기로 각각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7년의 엘니뇨 주기는 두 가지 형태의 엘니뇨가 다양한 형태로 상호작용을 해 복잡한 주기를 만들어낸 결과인 셈이다.
태평양 바닷물이 진자운동처럼 츨렁이는 것이 엘니뇨다. 동태평양 엘니뇨는 더 큰 규모에서, 중앙 태평양 엘니뇨는 작은 규모에서 이뤄지는 진자운동인 셈이다. [중앙포토]
반면 중앙 태평양 엘니뇨는 해양 상층이 상대적으로 덜 따뜻하고, 열이 적게 저장될 때 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2006~2007년과 2014~2016년에 발생한 엘니뇨는 중앙 태평양 엘니뇨로 분류된다.
중앙 태평양 엘니뇨가 발생하면 대서양 쪽에서는 더 많은 허리케인이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온난화가 지속할 경우 중앙 태평양 엘니뇨의 발생빈도가 상대적으로 증가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1997~1998년 엘니뇨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산불. [중앙포토]
캐나다의 경우 겨울 추위가 덜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유럽의 경우는 뚜렷한 경향성을 보이지는 않는다.
엘니뇨가 있을 때 동아프리카는 3~5월에 비가 잦아지지만, 남아프리카 쪽은 12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가뭄이 들기도 한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말라리아나 뎅기열 등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했던 엘니뇨는 1997~98년 엘니뇨였다.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는 가뭄으로 산불이 번지면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해수 온도가 평년보다 무려 5도 이상 높았다.
2014년부터 시작된 2015~2016년 엘니뇨 역시도 강력했다. 당시 엘니뇨 감시구역의 수온은 평소보다 2도 이상 높았다.
엘니뇨가 있었던 2016년 지구 기온은 역사적으로 가장 높았던 해이기도 하다.
미국 해양대기국(NOAA)가 공개한 2010년 7월 태국 연안 산호초의
호주 대산 호초의 경우 과거 40% 정도가 백화현상을 보였는데, 엘니뇨가 이어지면서 2016년 30%, 2017년 20%가 추가로 백화현상을 보였다.
엘니뇨 현상은 16세기에도 사람들이 관찰하고 알아챘을 정도로 지구온난화와는 무관하지만, 최근에는 온난화가 엘니뇨를 드세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류가 석탄·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태우며 배출하는 온실가스 탓에 지구 기온이 상승하고,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 더 강력한 엘니뇨가 출현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더욱이 엘니뇨로 인해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면 지구 기온도 덩달아 상승하는 식으로 온난화와 엘니뇨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가뭄·홍수 피해를 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편, 라니냐가 발생하면 동남아시아에서는 긴 장마가. 북미 대륙에서는 가뭄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미 페루에서 발견된 미라. 550년 전 엘니뇨 때 발생한 폭우와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신에게 인신공양을 한 흔적으로 추정된다. [EPA=연합뉴스]
남미 페루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을 신에게 바치는 인신 공양이 행해졌는데, 이것도 엘니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2세기에 건설됐지만 밀림 속에 잠들게 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 역시도 배경에는 엘니뇨가 있었다는 게 학자들의 추정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엘니뇨로 가뭄이 계속되면서 버려졌던 도시다. [중앙포토]
계속된 가뭄에 결국 사람들은 농경지도, 도시도 다 버리고 떠났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독일 나치군이 러시아를 침공했던 1941년 겨울의 혹한도 엘니뇨 때문이란 주장도 있다.
엘니뇨 현상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유럽에 겨울 추위를 몰고 왔고, 이 혹독한 날씨 탓에 나치군의 발목이 묶였다는 것이다.
1989년 3월 미국 알래스카 연안에서는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가 좌초돼 기름을 쏟아냈다.
선장이 술을 마신 탓이란 얘기도 있었지만, 빙산을 피하기 위해 항로를 이탈한 게 원인이었다.
엉뚱한 곳에 빙산이 나타난 것은 해류의 방향이 바뀐 탓이었는데, 그 뒤에는 라니냐가 버티고 있었다.
1989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유조선 엑손 발데즈 호의 기름 유출사고 당시 상황. [중앙포토]
당시 연구팀은 1950~2004년 사이 175개국에서 발생한 234개 갈등과 엘니뇨·라니냐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내전 발생 가능성이 라니냐현상 때 3%보다 엘니뇨 현상 때는 6%로 두 배나 높았다.
엘니뇨-라니냐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에서는 내전 가능성이 2%였다.
지난달 28일 오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을 보인 부산 수영, 해운대 지역 빌딩이 뿌연 대기에 파묻혀 회색빛을 띠고 있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겨울 추위는 덜하겠지만 미세먼지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
올겨울에는 엘니뇨 자체가 늦게 발달하고 있지만, 보통은 11월에 잦은 비, 12월의 이상 난동이 나타난다.
예상욱 한양대 해양융합공학과 교수는 “엘니뇨로 인해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한반도로 들어오고, 북서쪽의 찬 공기가 중위도 지방까지 내려오면 폭설이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엘니뇨로 인해 적도 부근에서 상승한 공기가 아열대 지역에서 하강하면서 고기압을 형성한다.
고기압은 한반도의 남동쪽에 자리 잡게 되고, 고기압에서 시계방향으로 바람이 불어나오면서 한반도에는 남풍이나 남동풍이 불어온다는 것이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바람, 특히 북서풍이 약해지고, 대기가 정체되는 경향을 보인다.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양이 동일하다면 엘니뇨가 있으면 미세먼지 오염도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예상욱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반도의 미세먼지 오염은 동태평양 엘니뇨가 발생했을 때가 태평양 중부 엘니뇨가 발생했을 때보다 심했다.
동태평양 엘니뇨 때는 겨울철과 이듬해 봄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평소보다 20% 상승했고, 태평양 중부 엘니뇨 때는 봄철 초미세먼지 농도가 10% 낮았다는 것이다.
동태평양 엘니뇨가 발생한 겨울철 한반도에서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붉게 표시된 지역이 평소보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곳이다. [그래픽 예상욱 한양대 교수]
엘니뇨는 봄철에도 영향을 미친다. 엘니뇨가 이어지는 봄철에 한반도가 건조해지는 경향이 있다.
중앙 태평양 엘니뇨의 경우 발생지역이 상대적으로 한반도에 가깝기 때문에 통상적인 엘니뇨보다 한반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여름철에 태풍 활동이 활발해지고 세력이 더 강한 ‘슈퍼 태풍’이 발생, 한반도까지 북상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9도를 기록하는 등 올 겨울 두 번째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7일 서울 광나루한강공원 강변에 고드름이 얼어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번 추위는 주말까지 지속될 전망"이라며 "건강과 농축산물 관리, 수도관 동파 등 추위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뉴스1]
[출처: 중앙일보] 페루인들 인신공양까지 하게 만든 엘니뇨…올겨울 추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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