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육상과 해상의 교통과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해 ‘범중화경제권’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일대(一帶·One Belt)는 ‘육상 실크로드 경제지대(Silk Road Economic Belt)’를 말한다. 중국 서북지역에서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대륙과 유럽을 관통하는 육상 무역통로를 구축하는 것이다. 한(漢)나라 무제가 개척한 동서 교역로인 실크로드를 부활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로(一路·One Road)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21st Century Maritime Silk Road)’를 말한다. 중국의 동·남 연해지역에서 동남아, 인도양, 중동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바닷길을 의미한다. 명(明)나라 영락제 당시 환관인 정화(鄭和)의 원정대가 바닷길을 뚫었던 해상 실크로드를 복원하는 것이다.
중국의 핵심 이익에 속한 한반도
시 주석은 그동안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시키겠다는 야심을 보여왔다. 중국몽이라는 것은 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중국이 무엇보다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돼야 한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 관계를 강화할 경우 거대한 중화경제권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시 주석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지역적 영향력을 확장함으로써 세계 유일 초강국인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키우려는 의도를 보여왔다. 실제로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 및 중동 일부 국가들은 중국과의 반미 연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일대일로에 참가하고 있는 국가들은 모두 78개국이나 된다. 시 주석은 중국과 이들 국가를 ‘운명공동체’라는 틀로 묶어 놓으려 하고 있다.
운명공동체라는 것은 일종의 ‘동맹’을 말한다. 시 주석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동맹’이라는 용어를 서슴없이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 6월 주재한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 개발도상국들을 동맹군으로 삼아 세력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4년 만에 소집된 중앙외사공작회의는 중국의 대외정책을 정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다. 당시 회의에는 시 주석을 포함해 리커창 총리 등 상무위원 7명 전원과 ‘제8의 상무위원’으로 불리는 시 주석 최측근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참석했다. 시 주석은 “주변 외교를 잘해 주변 환경을 중국에 더 우호적이고 더 유리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대국 외교와의 관계에서 국가의 핵심이익을 마지노선으로 한 국가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결연히 수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말하는 대국 외교는 대미 외교다. 중국 중심의 동맹권을 형성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바꾸고 중국의 핵심이익을 수호하는 새로운 미·중 관계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쉬룽 중국국제문제연구원 국제전략연구소장은 “역사적으로 중국은 발전도상국과 국제사무에서 동맹군과 동행자였다”며 “시 주석의 발언은 천연동맹국과 손잡고 운명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집권 2기를 시작한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보고에서 “국가 간에 동맹이 아닌 동반자로서 새로운 교류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랬던 시 주석이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 ‘동맹군’을 언급한 것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 패권 경쟁을 위해 우군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중국의 핵심이익은 남·동중국해, 대만, 티베트, 신장위구르, 한반도 등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운명공동체는 동맹이라는 용어를 숨기려는 의도에서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시 주석이 주창하는 운명공동체는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중국식 모델을 따르라는 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북·중 간의 세 차례 정상회담에서 운명공동체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시 주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중국과 조선(북한)은 운명공동체이자 변함없는 순치(脣齒·입술과 이)의 관계”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또 김정은에게 ‘변하지 않는 세 가지(三個不會變)’를 약속했다. 그 내용은 북·중 관계 발전에 대한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지지, 북한 주민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깊은 우의,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 등을 말한다. 이에 대해 김정은은 “북·중 친선을 대를 이어 목숨으로 여기며” “혈연적 유대” “한 집안 식구처럼 고락을 같이하며” “중국 동지들과 한 참모부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협동하겠다” 등을 강조했다. 시 주석 취임 이후 소원했던 북·중 관계는 이처럼 복원됐으며, 중국은 북한 정권의 생존을 위해 은밀하게 제재를 완화해왔다.
‘채무 제국주의’와 차이나 스탠더드
시 주석이 김정은을 다시 혈맹 관계로 끌어들인 것은 ‘한반도 대계(大計)’를 위한 심모원려(深謀遠慮)의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시 주석이 지금까지 공을 들여온 일대일로 프로젝트 때문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서쪽으로는 비교적 순항하고 있다. 물론 국제사회는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국들의 경제발전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막대한 빚을 지게 만들고 자국의 이득만을 챙기고 있다면서 중국을 ‘채무 제국주의(Debt Imperialism)’라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개발도상국, 저개발 국가들과 차관 계약을 맺으면서 철저하게 ‘차이나 스탠더드’ 적용을 요구해왔다. ‘차이나 스탠더드’는 기자재도 중국산을 쓰고, 건설 공사도 중국 업체가 맡고, 심지어 운영도 상당 기간 중국 기업이 하는 것을 말한다. 투명성 확보와 부패방지 방안 마련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는 선진국들이나 국제금융기구 등으로부터 차관을 빌리기 어려웠던 개발도상국과 저개발 국가들은 중국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개발도상국과 저개발 국가들은 중국이 제공한 자금으로 야심 차게 인프라 사업을 시작했지만,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빚이 늘어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결국 중국의 차관이 일종의 ‘독이 든 사과’가 된 셈이다. 중국은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의 과다르, 스리랑카의 함반토다, 지부티 등에 항구운영권을 확보하고 군사기지까지 세웠다.
중국, 단둥에서 부산까지 연결하겠다
중국으로선 이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동쪽으로 서서히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의도는 앞으로 한국과 러시아, 나아가 일본까지 교역을 확대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경제와 물류 주도권을 잡고 태평양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은 미국과 패권 다툼을 벌일 때 동아시아 지역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의 입장에선 항구들이 있는 북한은 전략요충지이자 태평양 진출의 발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북 3성과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연결해 동북 진흥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도 있다. 중국의 이런 속셈은 동북 3성 중 하나인 랴오닝성 정부가 지난 8월 27일 작성한 ‘랴오닝 일대일로 종합실험구 건설 총체 방안’이라는 문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랴오닝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단둥을 관문 삼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북한, 한국, 일본, 러시아, 몽골을 아우르는 ‘동북아 경제 회랑’을 조성함으로써 이 지역을 운명공동체로 묶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 문건에서 “단둥~평양~서울~부산을 철도와 도로, 통신망으로 상호 연결하겠다”면서 이 연결의 성격을 “남부 항구로 직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대일로를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부산까지 뻗어나가겠다는 것이다.
문건은 또 신의주와 단둥 사이 압록강의 황금평에 있는 북·중 경제구, 단둥의 북·중 호시(互市)무역구를 단둥의 중점 개발 개방 실험구와 함께 대북 경제협력의 중요한 지지대로 만들겠다고 명시했다. 또 적절한 시기에 단둥특구를 건설하도록 노력하고 선양, 다롄, 단둥의 공항과 북한 및 러시아 극동 도시 간 항공편 운항도 강화하기로 했다. 랴오닝성 정부는 “중·북 지도자의 중요한 합의를 지도로 삼아 대북 협력을 견고하게 계획한다”고 밝혀 한반도로 진출하려는 계획이 시 주석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임을 밝혔다.
중국 정부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 개발을 랴오닝성을 중심으로 주도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5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서울과 신의주, 중국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과 함께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른 국가와의 자유무역 협력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랴오닝성 정부는 이를 위해 단둥~훈춘~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연결되는 철도 건설과 단둥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연결되는 해상 통로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횡으로는 북·중 접경지역을 따라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고, 종으로는 중국과 한반도를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문건은 일대일로 동북아 관문의 지위가 두드러지는 시기를 2030년으로 명시해 이번 계획을 2030년까지 완성하는 것이 목표임을 시사했다. 시 주석은 9월 12일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 연설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 ‘동북아경제권’을 주창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한반도 진출은 미국과의 패권 다툼과 밀접한 관계라는 것임을 증명한 셈이다.
김정은이 지난 11월 16일 북·중 접경도시인 신의주를 현 시대의 요구에 맞게 개발하라며 건설 계획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이 보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현재의 산업지구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신의주의 철도역과 의주비행장을 현대적으로 재건하라”면서 “신의주 건설사업은 몇 해 안에 반드시 결실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황금평 경제특구가 속한 평안북도 신도군과 신의주 화장품공장을 방문하는 등 북·중 접경지역을 시찰한 적이 있다. 당시 시찰은 세 번째 중국 방문(6월 19~20일) 이후 첫 국내 활동이었다.
한반도신경제지도와 중첩되는 일대일로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한반도 진출 계획은 문재인 정부의 남북 경제협력 계획인 한반도신경제지도의 서울~평양~신의주~단둥 고속철도 연결 계획과 중첩된다. 시 주석은 지난 11월 17일 파푸아뉴기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별도의 한·중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공동 건설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양국은 FTA 2단계 협상을 가속화해 양자 호혜협력의 고도화 및 업그레이드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공동 건설은 북한 진출을 한·중이 함께하자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한국과 중국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전략적 이익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보여왔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베이징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 양국은 일방의 번영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운명공동체의 관계”라며 시 주석의 중국몽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는 언론 발표문에서 “한·중 정상은 우리의 신북방·신남방정책과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간 궤를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는 데 주목하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발굴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한사코 남북 철도 공동 조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심지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11월 25일 페이스북에 “2022년에 경의선을 타고 신의주까지 가서 단둥에서 갈아타고 베이징으로 겨울올림픽 응원을 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은 미국에 등을 돌리고 중화경제권에 편입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을 포용하겠다는 의지만을 실현시키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동참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는 없다. 또 중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미국을 고려해야만 한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적극 추진하면서 일대일로 프로젝트 저지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중국의 ‘신식민지 정책’인 것이 드러났다. 일대일로 참여국가들 중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업 규모를 축소 혹은 중단하거나 운영권을 넘기는 국가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있는 국가들까지 줄을 잇고 있다. 중국은 또 자원 확보를 비롯해 영토 등 핵심이익의 보호, 지정학적 이득, 미국과의 패권 경쟁 등을 고려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상당기간 유지할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처럼 지난 70년간 유지해온 한·미 동맹이 말 그대로 뿌리 깊은 관계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