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슈

[김창균 칼럼] 文 정부는 왜 마음에 없는 '혁신 타령'을 하나

Shawn Chase 2018. 11. 22. 18:54

조선일보

  • 김창균 논설주간


  • 입력 2018.11.22 03:17

    대한민국 혁신 대표는 삼성전자와 原電인데 적폐 낙인찍고 패대기 
    손으로는 숨통 죄면서 말로만 혁신 떠드는 건 소득주도 방패 필요해선가

    김창균 논설주간
    김창균 논설주간

    문재인 정부가 부쩍 혁신을 말하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 주말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연설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를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포용국가'라는 메뉴를 첫선 보인 게 지난 9월이었는데 두 달 만에 '혁신' 고명을 얹어 새로 내놨다.

    신임 정책실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 경쟁은 한 몸으로 묶여 있다"고 했다.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혁신성장을 하려면 소득주도성장도 함께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혁신을 소득주도성장의 방패로 내세웠다.

    기업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경쟁자들을 따돌리는 게 혁신이다. 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그만큼 세금도 많이 내서 나라를 먹여 살린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혁신 기업은 삼성전자다. 올 3분기까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48조원이다. 전체 상장법인 534곳의 영업이익 합계 130조원의 37%다. 또 전체 법인세의 10%를 납부한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브랜드 가치 19위로 꼽혔다. 100위 안에 든 유일한 한국 기업이다. 일본 기업들도 제쳤다. 나라 밖 자랑거리인 삼성이 국내에선 샌드백 신세다. 국가 기관 전체가 달려들어 삼성을 때린다. 압수 수색을 10번 당했고 임직원 수십 명이 수사를 받았다. 삼성의 승계 구도를 허물고 제2의 포스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산업 단위로는 우리 원전도 혁신 모델이다. 한국형 3세대 원전인 APR 1400이 처음으로 UAE에 수출됐다. 건설 수주액, 운영 관리비, 부품 연료 공급 비용까지 합해서 90조원에 달하는 프로젝트다. 한수원과 관련 직원 2800명이 현지에 파견돼 있다.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이다. APR 1400은 지난 9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표준 설계 승인을 받았다. 미국산 아닌 원전으로는 최초다. '미국 내에서 원자로를 건설해도 될 만큼 안전하다'는 뜻이다. 수백조 단위로 커지고 있는 세계 원전 시장을 공략할 도약대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원전이 위험하다'며 퇴출 명령을 내렸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 원자력 생태계가 1년 반 만에 붕괴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원전 대체를 위해 80조원을 투입해 키운다는 태양광·풍력은 외국 기업 잔칫상으로 변하고 있다. 자기 집 살림이면 이렇게 하겠나.

    문재인 정부에서 '혁신'은 중소벤처기업부가 담당한다. 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나서야 맨 꼴찌로 장관이 임명됐다. 문 정부 우선순위에서 '혁신'의 위치를 짐작하게 해준다. 홍종학 장관은 야당 의원 시절인 2013년 면세점 사업권을 5년마다 다시 심사하는 법을 만들었다. 공항에서만 운영하던 면세점을 시내 대형 매장으로 옮긴 한국형 면세점은 일본과 중국이 따라 할 정도로 혁신 케이스였다. 그런데 '홍종학법' 하나로 초토화됐다. 5년마다 사업권이 날아갈지 모르는데 누가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겠나.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자 홍 의원은 "그게 무서우면 면세점 안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5년이 흘러 '중소벤처부 장관 홍종학'은 이익공유제법을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이 목표 매출·이익을 달성하면 그 초과분을 협력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제도다. 기업의 혁신은 대박을 노리는 탐욕에서 비롯된다. 이익공유제는 대박이 터지면 그 결실을 나눠 가지라는 것이다. 혁신 유인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혁신 사령부'라는 벤처부가 이러니 다른 곳 돌아가는 사정이 오죽하겠는가. 노동부가 밀어붙인 주 52시간 근로제는 분초를 다퉈 신제품 경쟁을 하는 IT기업의 숨통을 조른다. 청와대가 어쩌다 한 번씩 규제 개혁 깃발을 들면 여당 의원들이 그 앞에 드러눕는다. 그러면서도 문 정부 사람들은 틈만 나면 혁신을 말한다.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외교 참사'를 빚은 문 대통령 유럽 순방에 대해 "기대 밖의 성과"라는 자화자찬이 나오자 이런 수수께끼가 시중에 돌아다녔다. "유럽 순방이 참사인 걸 진짜 모르는 걸까, 아니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생채기 날까 봐 모르는 척하는 걸까." 말 따로 행동 따로인 문 정부의 혁신 타령에도 비슷한 질문이 떠오른다. "혁신의 말뜻을 진짜 모르는 걸까, 아니면 소득주도성장을 살리려고 혁신을 인질로 앞세운 걸까." 경제 개념을 모르거나 국민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어느 경우든 그런 정부를 따라야 하는 국민의 불행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21/20181121032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