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투자 부진, 고용 악화…꺼지는 성장 엔진 위기의 한국경제 해법, 일본에서 찾다

Shawn Chase 2018. 10. 19. 16:19

270호 2018년 10월 15일

  • 일본을 포함해 세계 경제는 호황을 이어 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 유독 이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설비 투자가 감소하고 고용 부진이 심화되면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대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최근엔 주요 투자은행(IB)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마저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10월 10일 IMF는 ‘세계 경제 전망’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애초 3.0%에서 0.2%포인트 줄인 2.8%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9%에서 2.6%로 낮췄다.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도 지난 7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에서 2.9%로 낮춰 잡았다.

    IMF를 비롯해 우리 정부마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것은 한국이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탓에 두 나라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직접 타격을 입고 있는 데다,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조달 비용이 상승해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커졌다. 미·중 무역전쟁이 심화되면서 전 세계의 평균 관세율이 10% 수준으로 상승할 경우 한국 경제성장률은 0.6%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내적으로는 조선업,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이 장기화되면서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다. 심지어 설비 투자는 지난 8월까지 6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감소세다. 설비 투자의 6개월 연속 감소는 IMF 외환위기(1997년 9월부터 1998년 6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 이후 처음이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건축 및 토목공사 실적이 모두 줄면서 건설 투자도 전달 대비 1.3% 감소했다.

    현재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9로 2009년 8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동행지수는 기준선인 100을 넘으면 경기 상승, 넘지 못하면 하강을 의미한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올해 4월(99.7)부터 5개월 연속 하락했으며, 작년 3월(100.7) 이후 17개월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

    반면 세계 경제는 상승 국면이다. IMF는 2016년부터 시작된 경기 확장세가 지속되고 있으며, 2010~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7월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아베노믹스의 설계자’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 ‘한·일 산업분석 전문가’ 사토 노보루 나고야대 교수, ‘미움받는 회사에서 사랑받는 회사로’ 이시자카 노리코 이시자카산업 사장, ‘부도 직전 회사에서 25년 연속 흑자’ 곤도 노부유키 일본레이저 사장, ‘지한파 국제경제학자’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아베노믹스의 설계자’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 ‘한·일 산업분석 전문가’ 사토 노보루 나고야대 교수, ‘미움받는 회사에서 사랑받는 회사로’ 이시자카 노리코 이시자카산업 사장, ‘부도 직전 회사에서 25년 연속 흑자’ 곤도 노부유키 일본레이저 사장, ‘지한파 국제경제학자’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0년 전 일본과 유사한 상황”

    2%대 저성장 흐름이 굳어지면서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장기 침체 우려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용·투자 부진이 심화되면 ‘일자리 감소→소비 위축→경기 침체’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가 회복 불능 국면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투자와 고용이 장기적으로 부진한 것은 분명 안 좋은 모습”이라며 “한국 경제가 경기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가 일본식 구조적 장기 침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투자 위축과 소비 부진의 장기화, 노동 생산성 축소 등으로 구조적 장기 침체에 진입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형오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20년 전 일본의 경제상황과 유사한 패턴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한국 제조업의 해외이전도 당시 일본 기업의 상황과 닮아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다. 실물지표를 세부적으로 보면 내년에는 소비 불균형이 내수 악화로 번질 가능성 마저 있다. 우리 경제를 간신히 지탱해 주고있는 반도체 시장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 증가율은 2017년 21.6%에서 2018년 15.7%, 2019년 5.2%로 점차 둔화하고 있다. 중국이 정부 주도로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고, 일본 반도체 기업들도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자동차 수출도 유럽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부진하다. 올해 1∼7월 우리나라 총수출이 6.3% 증가했지만, 자동차 수출은 6.8% 감소했다.

    반면 일본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닛케이지수는 지난 2일 2만4270까지 치솟았다. 27년 만에 최고치다. 기업 경쟁력이 살아나고 수출이 늘면서 일자리는 많은데 사람은 부족한 상태다. 지난 8월 취업자 수는 6682만 명을 기록했다. 전년 동월 대비 109만 명이나 증가했다. 실업률은 1993년 이후 최저치인 2%대다. 기업에서 구하는 사람 수가 일자리를 원하는 이의 1.63배다. 1990년대 초부터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 버블이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렸던 장기 불황의 그림자조차 보기 힘들다. 각종 비리와 의혹에 시달렸던 아베 신조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 3연임의 길을 연 것도 결국은 ‘먹고 살기 좋아졌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日 경제구루 5인 “경제 체질 바꿔라”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기를 극복한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코노미조선 글로벌 콘퍼런스’에 참석하는 일본의 경제구루 5인은 “지금 당장 변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비참한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아베노믹스의 이론적 지주로 불리는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는 일본 경제의 회복 원동력으로 ‘아베노믹스’를 꼽았다. 그는 “아베 총리가 통화 정책으로 일본 경제를 회복시킨 것처럼 한국 정부도 통화 정책과 환율 정책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고도 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처럼 장기간에 걸쳐 구조조정하는 것보다 한꺼번에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현재의 위기를 ‘경제 체질이 바뀌면서 수반되는 성장통’으로 보는 한국 정부의 시각에 대한 뼈아픈 지적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인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는 “한국의 소득 주도 성장은 일본이 민주당 정권 때 추진했다가 망한 정책”이라며 “생산성은 나아지지 않는데 임금을 올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교수는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기업실적이 오르면, 임금은 따라 오르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한국의 산업 생태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도 제기됐다. 사토 노보루 나고야대 객원교수는 한국 산업계의 가장 큰 문제로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와 청년 실업 문제를 꼽았다. 그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중소기업이 많아야 청년 실업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대기업에만 의존하고 강한 중소기업을 육성하지 못하면 한국 산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다. 후카가와 유키코 교수는 “한국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잘못된 대응으로 시장이나 기술 면에서 일본, 중국, 유럽 등에 뒤처져 있다”며 “정치와 경제 문제를 구분해 미래 지향적인 국가 간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