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슈

[사설] 낚싯배 사고에 묵념하더니 해병 유가족엔 "의전부족" 모욕

Shawn Chase 2018. 7. 21. 19:26

조선일보


입력 2018.07.21 03:14


17일 포항에서 추락한 마린온 헬기 사고 장면은 볼수록 마음 아프다. 헬기가 이륙하는가 싶더니 이내 프로펠러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동체는 처참하게 불타 추락 충격에 튕겨나간 문짝과 꼬리 날개마저 없었다면 헬기였는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다. 마흔다섯 살 중령부터 스무 살 상병까지 해병대 장병 다섯이 희생됐다.

희생된 장병들 시신은 심하게 훼손됐다. 금속재질 인식표마저 녹아버렸다고 한다. 불타다 남은 부조종사의 소령 계급장만 겨우 찾았다. 나머지 시신은 2번부터 5번까지 번호로 구분해 수습됐다. 숯덩이처럼 타버린 남편과 아들을 보며 오열하는 유족들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유족들 마음을 정부가 후벼 파고 있다. 사고 하루 뒤 청와대 대변인은 "(사고 헬기의 원형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실제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최고 장비도 고장은 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기계 장비는 고장을 통해 결함을 고치며 발전한다. 이 사고로 국산 헬기를 과도하게 매도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다. 그러나 사고로 희생된 장병이 있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청와대가 해외 수출 계약이 깨질까 걱정했다고 해도 일단 순직 장병과 유족에 대해 애도하고 위로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대통령은 여론이 악화한 뒤에야 애도를 표했다. 그러자 청와대 눈치만 보던 국방부가 따라 했다. 그런데 유족들에게 '국방장관의 글'을 프린트해 나눠준 게 전부라고 한다.

그런 국방장관은 20일 국회에서 '유족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유족들이 요구하는 만큼의 의전 등이 흡족하지 못해 짜증이 나신 것 아니겠나"고 했다. 유족에 대한 모욕이다. 제정신인가 싶다.

대통령은 작년 말 낚싯배 전복 사고 때 "정부 책임"이라고 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비서들이 희생자 추도 묵념까지 했다. 이후 제천과 밀양서 벌어진 화재 사건 때도 비슷했다. 세월호 참사를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지난 19일 세월호 사건의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의 배상 판결이 있었다. 국가와 정부의 책임으로 치면 헬기 사건은 세월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정부의 어떤 관계자도 '책임'에 대해선 입도 벙긋 않는다.



재작년 9월 동해에서 해군 링스헬기가 추락해 장병 셋이 숨졌다.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도 의연했던 유족이 세 가지를 희망했다. '사고 원인을 밝혀 다른 군인의 순직을 막아달라', '국민이 사고를 기억해달라', '유 족을 국가가 돌봐달라'는 거였다. 이번 사고 유족들 바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유족의 응어리를 풀어주기는커녕 "어서 장례식 치르자"는 말만 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억울하면 유족들 입에서 "정부가 (사건을) 묻으려는 것 같다. 세월호 때와 어떻게 이리도 다른가"라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군인들 순직이 낚싯배 사고만도 못한 나라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0/20180720028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