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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미남자' 김태길 교수

Shawn Chase 2018. 6. 10. 18:38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 입력 2018.06.09 03:00

    [김형석의 100세 일기]



    50년 동안 친구였던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의 9주기를 보냈다. 신록이 우거진 초여름이었다. 그때가 잠재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던 때문일까. 며칠 전에는 김 교수가 꿈에 나타났다. 벌써 두 번째다.

    내가 어디론가 멀리 갔다가 서울 집으로 오고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길가여서 발걸음을 멈추고 왼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김 교수가 누군가와 정구를 치고 있었다. 살아 있을 때는 언제나 자기 정구 실력을 자랑했고 나는 속으로 웃곤 했다. 함께 정구를 치던 제자가 "교수님이 받아치기 좋도록 공을 보내주곤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꿈속의 김 교수는 달랐다. 젊은 선수같이 뛰고 있었다.

    내가 감탄스러운 자세로 보고 있는데 눈치를 챈 모양이다. 라켓을 든 채로 내가 서 있는 길 위쪽으로 다가서면서 '내 실력을 봤지?' 하는 식으로 환하게 웃었다. 내가 '그래! 놀랐어. 실력 인정해 줄게. 그런데 왜 가까이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했지?'라면서 반가워했다. 그런데 말은 하지 않고 어서 가보라는 듯이 운동장으로 다시 내려갔다. 마치 '나 바빠서 더 얘기할 시간이 없어'라는 표정이었다. 밝게 웃고 있었다. 꿈에서도 생각했다. '보란 듯이 자기 자랑뿐이군' 하고.

    김 교수는 나보다 머리가 좋은 편이다.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기 싸움을 한다. 주제는 두 가지다. 자기가 나보다 미남자라는 것과 나보다 생일이 늦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자기가 형님이라는 변명이다.

    한번은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였다. 우리들보다 약간 늦게 도착한 그가 내 맞은쪽에 앉으면서 "김형석 교수 넥타이가 양복에 잘 어울린다. 백화점에서 고르는 것을 보고 어떨까 싶어 걱정했는데…"라면서 시치미를 뗐다. 내 옆에 앉았던 서영훈 적십자사 총재가 "두 분 사이가 각별한 줄은 아는데 넥타이까지 골라 사주는 사이세요?"라고 물었다. 김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떡하겠어요. 형님이 동생을 살펴주어야지요.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지만, 어려서부터 정이 있어서" 하면서 말꼬리를 다른 데로 돌린다. 마치 '오늘은 내가 이겼지?'라는 식이다.

    김 교수는 자기가 나보다 못생겼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르겠다. 키가 크니까 열등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만나기만 하면 자기가 미남자라고 자랑한다. 40대부터 80 중반까지 봤는데 평생 소원이 자기가 미남자라는 사실을 내가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대구의 KBS 방송국에 함께 갔을 때였다. 김 교수의 대학 때 제자였던 여자 아나운서가 "선생님, 여전히 옛날같이 멋지시네요" 하자 내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알았지! 나 이 정도야'라는 듯이 좋아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조반을 끝내고 커피를 마시면서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도 기 싸움을 하면서 웃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8/2018060801669.html



    철학계 원로 김태길 교수 별세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등록 :2009-05-28 19:07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을 지낸 한국 철학계의 원로이자 수필가 김태길(사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7일 오후 11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

    한국 현대철학 제2세대인 고인은 1920년 충북 중원군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제3고(문과)를 거쳐 도쿄제국대 법학부를 다니다 45년 해방 뒤 서울대로 옮겨 석사과정을 마쳤다. 60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49년 이화여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건국대, 연세대를 거쳐 65년 서울대로 자리를 옮겨 일하다 86년 정년퇴직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을 지냈고 철학문화연구소 이사장, 심경문화재단 이사장으로 20여년간 재직했다.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장을 맡은 적도 있다.

    대한민국 학술원상, 인촌상(학술부문),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

    우리나라 윤리학의 정초를 놓은 <윤리학> <한국윤리의 재정립> <사회철학> 등 여러 학술서와 번역서들이 있고, 수필집 <웃는 갈대> <흐르지 않는 세월> <일상 속의 철학> <유교적 전통과 현대한국> 등을 썼으며, 자전적 에세이집 <체험과 사색> 등을 남겼다.

    부인 이종순씨와의 사이에 아들 도식(건국대 철학과 교수), 딸 수경·효남씨를 두었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발인은 30일 오전 7시다. (02)2030-7901.

    한승동 선임기자, 연합 sdha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357478.html#csidx45be1c466584015a04e2a555ca65b7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