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남녀심리

이혼의 셈법

Shawn Chase 2017. 10. 6. 02:28
                                        

부부가 공동체라는 인식이 옛날보다는 약해졌다. 결혼은 더 이상 일방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우리나라 법원은 유책주의를 따르고 있다.
유책주의를 취할 경우 장점은 바람피운 사람의
배우자가 강제로 이혼당하는 상황, 이른바
축출이혼이 방지된다는 것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이 조정에 실패하였다. 지난 5월 8일 서울가정법원에서 조정기일이 열렸지만 합의에 실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둘의 이혼은 재판으로 가려지게 되었다. 조정이 실패한 큰 원인은 재산분할에 있어서 양측의 이견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임 전 고문은 이사장을 상대로 1조2000억원의 재산분할을 신청한 바 있다. 이혼 시 핵심은 재산분할이다. 물론 이혼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혼을 무작정 말리는 것이 과연 당사자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바람직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만약 이혼을 피할 수 없다면 정확히 알고 대비하는 것이 좋다. 이혼 시 꼭 필요한 법률지식을 정리한다.
 
이혼이 늘어나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 사회의 결혼관이 크게 바뀐 점을 들 수 있다. 개인주의 성향이 발달한 결과 부부가 공동체라는 인식이 옛날보다는 약해졌다. 결혼은 더 이상 일방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예컨대 남편의 성공을 위해 아내가 무조건 희생하는 형태의 결혼관은 더 이상 환영 받기 힘들다.
 
삶의 질이 과거에 비해 풍족해진 것도 중요한 이유다. 이혼을 염두에 둔 부부는 재산분할에 관심이 매우 많다.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것이 부부라지만 필자가 보기에 오히려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 부부의 경우 이혼률이 낮다. 하지만 부자들의 경우 이혼 시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이혼이 오히려 흔하다. 부부합산 월소득이 200만원이라면 이혼으로 100만원을 받는다고 해도 경제적 자립이 어렵기 때문에 이혼이 현실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경우 외제차를 포기하고 국산차를 타는 것을 선택할지언정 일방의 폭력 및 외도를 참는 경우는 드물다.
 
이혼의 원인을 찾을 때 유책주의와 파탄주의가 있다. 양 당사자 모두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으로 이혼사유가 있는지 가려야 한다. 이때 바람을 피운 사람은 상대방에게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유책주의라는 법리 때문이다. 유책주의란 배우자 중 한쪽이 동거·부양·정조 등 혼인 의무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때와 같이 이혼사유가 명백한 경우에 그 상대방에게만 이혼을 청구할 권리를 주는 제도를 말한다. 결혼 중 상대방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바람을 피운 사람에게는 이혼할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이다.
 
유책주의의 반대로 파탄주의가 있다. 파탄이란 완전히 망가졌다는 뜻이다. 즉 이유를 불문하고 혼인관계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보이는 사정들이 있다면 혼인이 파탄난 것이다. 파탄주의에 따르면 누가 바람을 피웠든 폭행을 했던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부부 사이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 경우 누구든 이혼을 청구할 수 있고, 법원은 이혼을 허가해 주게 된다.

 
우리나라 법원은 유책주의를 따르고 있다. 유책주의를 취할 경우 장점은 바람 피운 사람의 배우자가 강제로 이혼당하는 상황, 이른바 축출이혼이 방지된다는 것이다. 바람피운 남편은 아내에게 이혼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파탄주의의 장점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혼인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사정이야 어쨌든 부부 사이에 감정적으로 골이 깊어진 경우라면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파탄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이혼 시 유책주의를 취할 것인지 파탄주의를 취할 것인지는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2015년 9월 대법원은 이혼 시 파탄주의를 도입할 것인지를 주제로 공개변론을 실시하기도 하였는데 1표 차이로 파탄주의 도입이 부결되기도 하였다. 아직은 파탄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시기상조이고, 유책주의를 취하는 것이 사회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협의상 이혼제도가 실질적으로 파탄주의의 기능을 하는 것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재판상 이혼이 힘들 경우 협의상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바람을 피운 사람이 거액의 돈을 배우자에게 주는 것을 조건으로 이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즉 바람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난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금전적 위자를 해 주고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얼마든지 이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람을 피워도 이혼이 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더라도 바람피운 배우자가 이혼이 가능한 세 가지의 경우가 있다. 첫 번째로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다. 두 번째로는 바람피운 배우자의 잘못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다. 바람을 피운 배우자가 꾸준히 상대 배우자 및 자녀에게 생활비를 지급해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세 번째로 세월의 경과에 따라 바람을 피운 배우자에 대한 비난의 정도와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모두 약화되어 책임을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별거 상태가 30년 이상 되었고, 이제 양 당사자도 굳이 서로의 잘못을 따지지 않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실제로 2015년 서울가정법원 항소심은 바람을 피워 혼외자까지 둔 남편이 부인을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유책주의에 따라 청구를 기각했던 1심을 파기하고 이들의 이혼을 허용하였다. 가정법원이 이혼을 허용한 위 사건의 경우 바람피운 남편이 세 자녀의 교육비와 전세자금 등 수억원을 부담해 온 사실이 있고, 별거도 25년이나 했었다. 즉 25년이 넘은 별거 생활 동안 혼인의 실체가 사라지며 더 이상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점을 고려해 서울가정법원은 이혼을 허용하였다.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재산, 어머니로부터 증여받은 재산도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이 될까? 홍길동씨는 30년 전에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건물과 20년 전 어머니로부터 증여받은 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내는 이혼 시점에 이 재산을 분할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헷갈리는 부분 중 하나다.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 취득한 재산을 자녀가 물려받았는데 자녀가 이혼할 경우 상대방에게 그 재산을 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문제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재산분할 방식을 먼저 알아야 한다. 각 재산별로 기여도를 다르게 산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결혼할 때 집은 남편이 해 왔으니 집에 대해서는 남편과 아내의 기여도가 9대 1이고, 자동차는 아내가 혼수로 해 왔으니 자동차는 남편과 아내의 기여도가 2대 8이 된다든지

이런식으로 재산분할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속·증여받은 재산도 분할

 
이혼 시 재산분할을 할 때는 우선 남편 명의의 재산과 아내 명의의 재산을 모두 합산하는 것이 원칙이다. 합산한 재산에 각자의 기여도를 곱해 재산분할의 액수를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계산하는 이유는 부부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부 중 한 사람 명의로 돈을 모은 다음 그것을 가지고 배우자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은 부동산 차명을 엄격히 금지하지만 예외적으로 부부에 한해서는 부동산 차명을 허용하고 있다.
 
재산분할에 있어서는 각자의 기여도를 입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원 실무는 가사노동, 즉 내조도 기여도 산정에 참작하고 있다. 법원이 가사노동을 기여도 산정에 참작하는 데는 법리적 측면과 정책적 측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법리적 이유로는 아내가 가사노동을 하지 않았다면 가사도우미 고용 등으로 그만큼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는 점, 정책적으로는 가사노동을 기여도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과거 전업주부가 대부분이었던 현실에서 여자들이 재산을 거의 못 받고 쫓겨나듯이 이혼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여자도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재산분할의 기여도 산정에 있어서 가사노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재산분할 시에는 남편 및 아내 명의의 재산을 모두 합한 다음 기여도를 계산하게 되므로 상속받은 재산, 증여받은 재산도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을 상대로 1조2000억이라는 거액의 재산분할을 청구한 데에는 위와 같은 배경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법원 2009. 6. 9. 결정은 ‘부부 중 일방이 상속받은 재산이거나 이미 처분한 상속재산을 기초로 형성된 부동산이더라도 이를 취득하고 유지함에 있어 상대방의 가사노동 등이 직·간접으로 기여한 것이라면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이는 부부 중 일방이 제3자로부터 증여받은 재산도 마찬가지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다만 재산형성의 기여도 입증에 있어서 실제로 상속 및 증여를 받은 사람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함은 분명하다.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

[출처: 중앙일보] 이혼의 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