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7.09.24. 14:57 수정 2017.09.24. 17:26
[동물원의 살아남기] ① 안전하지 않은 공영동물원
시립동물원서만 18년동안 산 뒹굴이
근친교배로 사시 눈에 걸음마저 불편
시멘트 우리와 방사장 오가다 투쟁사
가해 의심받는 같은 방 암컷 호랑이
번식기 예민한데 격리조차 안해 사달
시베리아호랑이 ‘뒹굴이’의 탄생과 죽음.
18년 동안 공영동물원에서 살다 간 뒹굴이의 삶은 21세기 한국 동물원사를 관통한다.
“노령 등 전신허약 상태에서 투쟁으로 인한 꼬리 전체의 심각한 교상 후 전신 패혈증으로 폐사함.”
지난 3월 숨진 수컷 시베리아호랑이 ‘뒹굴이’(당시 18살)를 부검한 수의사는 사인을 이렇게 적었다. 1999년 서울동물원에서 태어난 뒹굴이는 사육사 앞에서 뒹굴뒹굴 귀여운 짓을 잘해 이름이 뒹굴이가 됐다. 2000년 서울동물원에서 광주에 있는 우치공원동물원으로 올 때부터 잘 뒹굴었다. 어미 호랑이가 키우는 대신 사람이 키우는 인공포육 기간을 거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만 해도 국내 동물원에서는 종 관리, 종 보존 계획에 대한 인식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뒹굴이는 서울동물원 호랑이끼리 근친교배로 태어났다. 유전 결함 때문에 뒹굴이의 눈은 사시였고 걸음걸이도 편하지 않았다. 뒹굴이가 있던 동물원은 2008년 청주동물원에서 8살 어린 암컷을 데려와 뒹굴이와 번식하도록 유도했지만 결국 뒹굴이는 새끼를 낳지 못했다. 2년 전 맹수사를 리모델링하기 전까지 좁은 시멘트 우리와 방사장을 오가며 지냈다.
뒹굴이는 다른 호랑이의 공격을 받고 이틀이 지나 숨졌다. 뒹굴이 주검을 확인한 동물원 관계자들은 “허벅지 뒷다리와 허리에 출혈이 심했다”, “발톱으로 긁힌 엉덩이쪽 가죽이 벗겨져 있었다. 허리를 잡고 엉덩이를 할퀸 것 같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꼬리가 잘근잘근 씹혀 있었다”고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복기했다.
누구도 뒹굴이가 공격받던 장면을 보지 못했다. 맹수사에는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없었다. 현장의 기록은 철창 근처에 뿌려져 있던 핏자국뿐이었다. 뒹굴이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가지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동물원은 호랑이 암컷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뒹굴이와 같이 살던 암컷(10살·이름없음) 시베리아호랑이가 번식기에 예민해져 뒹굴이를 다치게 했고 세균 감염으로 뒹굴이가 죽었다고 결론지었다. 담당 수의사는 지난 8월 “옆방에 벵골호랑이 3마리가 있기는 하지만 암컷 말고는 뒹굴이를 방에서 공격할 수가 없다. 맹수끼리 싸우는 건 순간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수의사가 들어가서 말릴 수도 없다. 번식기에는 격리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국범보전기금 대표인 이항 서울대 교수는 “호랑이가 번식기에 위험할 때가 있는 걸로 안다”며 “하지만 관리를 잘하면 (다른 동물과 싸우다 죽은) 투쟁사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뒹굴이의 죽음 같은 투쟁사는 동물원에선 없어야 한다. 동물원 동물은 야생보다 심심하긴 해도 오래는 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겨레>가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환경부로 받은 전국 6개 주요 시립동물원 자료를 보면, 3년 동안 906마리의 동물이 폐사했다. 이 중 투쟁사가 67마리로 적지 않다. 실제 폐사 원인별로 따져보면 광주우치공원 동물원은 투쟁사만 16마리였다. 전북 전주동물원은 서열다툼으로 사망한 개체가 다람쥐원숭이, 일본원숭이 등 6마리였다. 서울어린이대공원도 투쟁사만 14건이었다. 프레리독 2마리와 고니, 장미앵무와 목도리앵무 등이 폐사한 종이었다. 서울동물원은 2014년 8건, 2015년 12건(야생동물이 조류 잡아먹음 6건 포함), 지난해 11건으로 보고했다. 이용득 의원은 “투쟁사는 대부분 동물사 관리가 전문적으로 이뤄지지 않거나 사육환경이 열악할 때 더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환경부가 전시동물의 사육환경 등 복지에 관한 사항을 관리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이 부실한 현행)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인명사고도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서울동물원과 서울어린이동물원, 대전오월드에서 일어난 인명피해 현황을 보면, 서울동물원 6건, 대전오월드 4건, 서울어린이동물원 1건이었다. 서울동물원에서는 2014년 4월 낙타가 우리 밖으로 목을 뻗어 관람객(37)의 머리채를 당겼고, 지난해 5월 공작이 어린이(4) 얼굴 2곳을 공격했고, 한달 뒤 17개월 된 어린이가 어린이동물원에서 염소에게 자율먹이주기를 하다 이빨에 긁혀 손가락을 다친 적이 있다. 대전오월드에서는 지난 5월 어린이날 40대 관람객이 낙타에게 먹이 주다 손가락을 물렸다. 그밖에 사고는 서울어린이동물원 사자 사육사 사망사고 등 사육사의 피해였다.
지방정부 예산으로 꾸려가는 공영동물원은 ‘낙후하다’는 지적에 대해 대체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한다. 동물 관리에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데,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이 동물복지에 관심이 있어야 충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전국 주요 시립동물원 6곳 3년동안
싸우다 죽은 동물 수만 67마리나 돼
시립동물원 대다수 수입 적어 적자
대구동물원 맹금사는 44년 오래돼
<한겨레>는 지난 6~8월 정보공개청구와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대표적인 시립동물원 6곳에 경남 진주시 진양호동물원을 더해 전국 시립동물원 7곳의 재정 자립 정도와 사육시설 낙후 정도를 알아봤다. 수치로 확인할 수 없는 정성적 평가는 동물원 관계자나 동물보호단체 활동가 등 30여명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했다.
시립동물원의 수익성 측면을 볼 때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다. 서울동물원은 인건비를 포함했을 때 예산 대비 수입 비율이 46.4%에 그쳤다. 서울어린이대공원도 78억원의 수입과 109억원의 지출로 손익비율이 71.5%에 불과했다. 대전도시공사가 직영하고 있는 대전오월드의 재정자립도는 75%이며, 전주동물원은 10억2000여만원의 수입과 50억8500여만원의 지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우치공원 동물원은 수입이 6억7400여만원이고 지출이 50억4000여만원이다. 이 중 전주와 광주는 사육시설 개선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진양호동물원은 인건비를 포함해 3억8000여만원을 쓰고 1억1400여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가난한 동물원에 바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동물원 안에 있는 사육시설 노후 정도를 조사해보니, 1973년 만든 대구동물원의 공작사, 맹금사, 늑대사 등이 가장 오래됐다. 이어 1978년(전주동물원의 큰고니사와 현재의 곰사), 1984년(서울동물원 맹금사와 사슴사), 1986년(진양호동물원 전체)이었다. 광주우치공원 동물원이 1992년, 서울어린이동물원 들새사가 1999년, 대전오월드 열대조류관이 2002년 순서였다. 시립동물원 동물 중 일부는 짧게는 15년에서 40년이 넘는 사육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15년 경력의 한 동물원 수의사는 “국내 동물원은 사육사, 수의사, 건축설계 전문성 부족과 철학 부재, 낙하산 원장, 동물원 네트워크 없음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며 “세계 수준의 외국 동물원들이 주목하는 종 관리와 보존, 그 동물이 살아갈 야생 서식지 보존, 생태교육은 엄두를 낼 수조차 없다. 현재 국내 동물원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가 식민지로 삼은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진귀한 동물을 본국으로 데려와 국민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국력을 과시하던) 암울한 산업혁명 시대의 동물원일 뿐이다. 개별 동물원 차원에서 해결이 어려우니 나라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우리 박수혁 김영동 김일우 최예린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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