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및 연예

굿바이 마광수, 문약한 풍운아의 '잡초'와 '자살자를 위하여'

Shawn Chase 2017. 9. 5. 22:58

신동립 입력 2017.09.05. 16:54




【서울=뉴시스】 신동립 기자 = ‘대체 어느 누가 잡초와 화초의 한계를 지어 놓았는가 하는 것이에요. 또 어떤 잡초는 몹시 예쁘기도 한데 왜 잡초이기에 뽑혀 나가야 하는지요? 잡초는 아무 도움 없이 잘만 자라주는데 사람들은 단지 잡초라는 이유로 계속 뽑아 버리고만 있습니다’- 마광수 ‘잡초’

마광수(66) 전 연세대 교수(현대문학)가 5일 낮 1시51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1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8월 정년퇴임 후 1년여 만에 생을 마감했다.

생전 마 교수는 “극심한 우울증”을 호소해 왔다. 필화 탓에 1990년대 장기간 허송세월을 하면서 얻은 마음의 병이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라는 책을 낸 뒤 교수들의 품위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고, 소설 ‘즐거운 사라’(1992)가 야하다는 이유로 긴급체포 당해 수감되는 바람에 해직되기도 했다. 2000년 같은 과 동료교수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면서 우울증이 심해져 3년6개월 동안 휴직했다. 외상성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입원했다. 2002년 한 학기 동안 복직해 강의하다가 우울증 악화로 학기 말 다시 휴직했다. 2004년 건강을 겨우 회복하고 연세대로 복직했다.

마 교수는 “문단에서도 왕따고, 책도 안 읽어보고 무조건 나를 변태로 매도하는 대중들, 문단의 처절한 국외자, 단지 성을 이야기했다는 이유 만으로 평생을 따라다니는 간첩 같은 꼬리표. 그동안 내 육체는 울화병에 허물어져 여기 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지독한 우울증은 나를 점점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 나는 점점 더 늙어갈 거고 따라서 병도 많아지고 몸은 더 쇠약해갈 것이고, 논 기간이 아주 길어 아주 적은 연금 몇 푼 갖고 살려면 생활고도 찾아올 거고. 하늘이 원망스럽다. 위선으로 뭉친 지식인, 작가 등 사이에서 고통받은 것이 너무나 억울해지는 요즘이다. 그냥 한숨만 나온다“고 털어놓았었다.

“파란만장, 지쳤다. 애썼지만 한국 문화풍토의 이중성은 안 없어졌다. 동지가 없다. 나 같은 작가가 안 나오고 있지 않느냐”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마 교수는 13년째 운영해온 홈페이지 ‘광마클럽’마저 최근 비공개로 전환시키며 독자와 팬들의 소통로를 스스로 차단했다.

우울증은 정신적 요인에 의한 부분이 큰 질환이다. 술자의 축문 독경, 무(巫) 의식, 기도, 부적 등의 효험을 보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약물은 더 잘 듣고, 위안을 주는 유사 종교도 지천으로 널렸다.그러나 마 교수에게는 신앙이 없었다. 자작 사자성어 ‘이허수명(以虛受命)’을 좌우명 삼았다. 마음을 비우고 천명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마 교수는 “그 천명이 기독교의 여호와 신이든, 불교의 부처님이든, 아니면 그저 막연히 하늘의 뜻이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한테는 그저 광범위한 의미로서의 자연쯤 되겠다”며 초연해하기도 했다.

자살은 근로를 두려워한다. 우울증은 일에 몰두케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일은 생의 리듬을 되찾아주고 성취감까지 안긴다. 하지만 마 교수는 “출판사들이 예전같지 않다. 경제 문제도 걱정이다. 앞으로 빈 시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오호 통재라, 이 고통을 어찌하리오”라고 하소연했었다.

지난 2일 동부이촌동 마 교수의 아파트 근처 빵집에서 고인을 만난 연극제작자 강철웅씨는 “충격이다. 11월 공연예정인 마 교수 원작 ‘즐거운 사라’ 극본을 전달했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듯해 상당한 로열티도 약속했다. ‘즐거운 사라’를 이후 영화로도 만들기로 합의했었다”며 슬퍼했다.

사흘 전 그 자리에서 마 교수는 우유를 마셨다. 치아가 많이 빠진 데다가 신경성 복통으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할 일이 없어서···”라며 담배를 연신 피웠다.

1985년 12월 연극학 교수(65)와 결혼한 마 교수는 1990년 1월 합의이혼했다. 자녀는 없다.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말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말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말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말라.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비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다 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말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말라. 그는 가장 솔직한 자. 그는 가장 자비로운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마광수 ‘자살자를 위하여’

◆마광수(馬光洙·1951~2017)

◇서울 생. 청계 초등학교 졸업, 대광 중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연세대, 한양대, 강원대 등 여러 대학 강사.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교수(1979~1983),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이론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시 창작론’, ‘마광수 문학론집’,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시학’, ‘문학과 성’, ‘삐딱하게 보기’, ‘연극과 놀이정신’

◇시집= ‘광마집(狂馬集)’, ‘귀골(貴骨)’,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야하디 얄라숑’,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 ‘일평생 연애주의’,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 ‘천국보다 지옥’, ‘마광수 시선’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사랑받지 못하여’, ‘열려라 참깨’, ‘자유에의 용기’, ‘마광쉬즘’,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더럽게 사랑하자’, ‘마광수의 뇌구조’, ‘나의 이력서’, ‘스물 즈음’ 등

◇문화비평집=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 ‘사라를 위한 변명’,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육체의 민주화 선언’,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생각’

◇철학적 전작에세이= ‘성애론’, ‘인간에 대하여’,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마광수 인생론: 멘토를 읽다’, ‘사랑학 개론’, ‘행복 철학’, ‘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 ‘섭세론’

◇소설= ‘권태’, ‘광마일기’, ‘즐거운 사라’, ‘불안’, ‘자궁 속으로’,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광마잡담’, ‘로라’, ‘귀족’, ‘발랄한 라라’, ‘사랑의 학교’, ‘돌아온 사라’, ‘미친 말의 수기’, ‘세월과 강물’, ‘청춘’, ‘상상 놀이’, ‘2013 즐거운 사라’, ‘아라베스크’, ‘인생은 즐거워’, ‘나는 너야’, ‘나만 좋으면’, ‘사랑이라는 환상’

◇화문집= ‘마광수의 아포리즘 낙서 화첩, 소년 광수의 발상’

◇전시회= ‘마광수·이목일·이외수·이두식 4인의 에로틱 아트전’, ‘마광수 개인전’, ‘마광수·이목일 전’, ‘마광수 미술전’, ‘색(色)을 밝히다 전’, ‘마광수 전’, ‘마광수·천소연 2인전’, ‘소년. 광수 전’, ‘마광수·변우식 2인전’, ‘마광수 초대전’, ‘꿈꾸는 삼총사전: 마광수·한대수·변우식’ 등

reap@newsis.com


마광수 동창들 "오늘 와달라고 했는데..사회가 죽인 것"

이원준 기자 입력 2017.09.05. 18:25

"정년퇴임 전부터 힘들어해"..'죽어간다' 표현도
서울 순천향대 병원에 시신 안치..빈소 준비 중

故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News1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1951~2017)가 5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은 마 전 교수의 고등학교 동창들은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죽인 것"이라며 고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마 전 교수가 안치된 서울 순천향대 병원에는 이날 오후 비보를 듣고 찾아온 지인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마 전 교수가 연세대 정년퇴임 전부터 우울증을 겪어왔다'고 입을 모았다.

고교동창 A씨는 고인이 숨지기 직전인 이날 낮 12시30분까지 전화통화를 했다고 전했다. 그는 "마 전 교수가 (집으로) 와달라고 했다"며 "약속을 잡고 분당에서 오는 길에 소식을 들었다"고 씁쓸해했다.

이어 A씨는 "(마 전 교수가) 평소에 힘들다, 죽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최근에는 '죽어간다'라는 표현도 쓰더라"고 말했다.

다른 고교동창 B씨는 "(마 전 교수가) 자주 했던 말이 '쓰레기통 같이 살고 있으면, 쓰레기를 까야지 개선될 것 아니냐'는 것"이라며 "자기가 소설 쓴 것이 무슨 잘못이냐는 말을 평소에 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B씨는 "어떻게 보면 사회가 죽였다고 볼 수 있다"며 "그가 사회와 소통이 안 됐기 때문이지, 단순히 대학을 그만 둔 노교수가 우울증 걸려서 죽은 게 아니다"고 했다.

이들 동창은 마 전 교수가 지난해 연세대에서 정년퇴임하기 전부터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증상이 심해지면서 평소 입에 잘 대지 않았던 술도 가끔 찾았다고 전했다.

마 전 교수의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누나와 조카가 있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마 전 교수는 이날 오전 1시35분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숨진 채 유가족에 발견됐다.

마 전 교수는 평소 병원에서 입원을 권유할 정도로 우울증을 심하게 앓아 우울증 약을 복용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마 전 교수가 함께 생활하는 가사도우미가 외출한 사이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소설가로도 활동했던 마 전 교수는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을 펴내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소설 '즐거운 사라' 등이 '외설적인 문학'이라고 평가받으며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구속되는 등 풍파를 겪었다.

wonjun44@


생전의 마광수 교수 "억울하고 한이 쌓여 울고싶다"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9-05 17:17 송고


고 마광수 교수 © News1 


국내 '에로티시즘 문학'의 기수로 잘 알려진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5일 숨진 채 발견됐다. 20대 때 홍익대에 조교수로 임용되어 천재교수로 이름을 알리고, 에로티시즘 문학의 기수로 활동한 마광수 전 교수의 생애는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굴곡으로 이뤄져 있다. 

시와 소설 등 문학은 물론 그림에도 재능을 보인 한 작가의 삶의 중심에는 그가 평생 추구한 에로티시즘과 그를 반대하는 '국가의 폭력', 그리고 '품위'를 중시하는 교수사회의 의견차가 존재했다. 마광수 전 교수는 28세의 나이에 홍익대에서 조교수로 임용되고 윤동주 연구 등의 권위자로 인정받으며 문단의 기대를 받았다. 이어 33세에 연세대로 옮긴 후 마 교수는 격의없고 파격적인 강의 스타일로 연세대를 대표하는 교수로 이름을 날렸다.

1980년 첫 시집 '광마집' 후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으로 큰 인기를 끌던 그는 여대생 사라의 자유분방한 성적 편력을 그린 소설 '즐거운 사라'를 1992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작품으로 인해 '외설 문학'이라는 주홍글씨와 구속이라는 비극을 맞았다. 검찰이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가 있다고 수사했고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세대에서 직위 해제를 당한 것이다. 하지만 생전의 마 전교수에 따르면 이 죄에 대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하에서 사면조치됐다. 


마광수라는 존재는 우리 사회에서 '시기상조'였을까.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마 교수의 문학과 그의 솔직한 언행들은  진지하고 근엄한 대학 교수 사회에서 용인받지 못했다. 동료 교수들과의 마찰로 마 전 교수는 외상성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입원, 학교에 휴직계를 제출했고 2002년 한 학기 동안 복직해 강의하다가 우울증 악화로 학기 말 다시 휴직했다. 2004년 건강을 겨우 회복하고 연세대에 복직하는 등 불행으로 인한 상심은 끈질기게 그를 괴롭혔다.

고인은 생전 뉴스1과 인터뷰에서 “한창 일할 때인 40대에 책이 판금되고 구속되는 등 해서 일을 못했다. 일궈놓은 재산도 없는데 연금도 받지 못한다. 예전같으면 초판 최소 5만부~10만부를 찍었던 책도 이제는 나가지 않는다"며 "(내 인생이) 억울함과 한이 쌓여 울고 싶다”고 말했다.

© News1


'천재교수'에서 '외설작가'로 …비운의 생 마감한 마광수(종합2보)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9-05 16:35 송고 | 2017-09-05 18:15 최종수정

20대 '천재교수'에서 '외설작가'로 낙인 찍혔던 비운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1951~2017)가 5일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인 것으로 전해졌다.

마 교수는 이날 오후 1시35분쯤 서울 용산구의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마씨가 우울증 약물을 복용해오던 중 유족이 자리를 비운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고인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을 펴내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소설 '즐거운 사라' 등을 써서 1990년대 필화를 겪었다. 지난해 연세대에서 정년퇴직했지만 19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출간한 후 교수의 품위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아 명예교수도 되지 못하고 연금도 받지 못한 것을 비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마광수 교수. 2014.11.13/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마 전 교수는 그림과 시에 뛰어났다. 28세의 나이에 홍익대에서 조교수로 임용되면서 '천재 교수'라고 불리며 학계의 기대를 받았고 33세에 연세대에서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첫 시집 '광마집'(1980)에는 지식인으로서의 자괴감, 사회 모순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윤동주의 시를 연구한 문학이론서로도 유명하며, 놀이로서의 예술을 조명했다. 읽히는 작품을 위해 다양한 장르에서 창작도 시도했다. 

그러나 교수 초기에 시집이나 학문적인 성취를 보여줬던 그의 면모는 자의반 타의반 '에로티시즘의 기수'가 되면서 일반인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됐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즐거운 사라' 같은 작품들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성애문학'에 작가 스스로도 집중하면서 마광수 문학의 다양성이 묻혀 버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의 작품 '즐거운 사라'(1992)에 붙여진 '외설적인 문학'이라는 주홍글씨가 붙는 것은 물론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구속되기에까지 이르렀다. 

1985년 12월 연극학 교수와 결혼한 마 교수는 1990년 1월 합의이혼했다. 자녀는 없다. 노모는 2015년 별세했고, 유족으로는 누나가 있다. 고인의 유족은 뉴스1과의 전화통화에서 "오늘 돌아가셨다. 그동안 아파서 우울증이 있었다. 자살이다"라고 짧게 사인을 밝혔다.


ungaung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