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학

[IF] Rainmaker 주술사, 과학자에게 바통 넘기다

Shawn Chase 2017. 8. 27. 13:38


박건형 기자  

입력 : 2017.07.01 03:01

더이상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순 없다…
'인공 강우'는 목마른 한반도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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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충민 기자


"석척(蜥蜴·도마뱀)아! 석척아!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며 비를 주룩주룩 오게 하면 너를 놓아 보내겠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실록에는 1407년 창덕궁에서 열린 기우제(祈雨祭)가 기록돼 있다. 태종은 독(甕)에 도마뱀을 넣고 아이들에게 나뭇가지로 괴롭히게 했다. 용과 비슷한 도마뱀을 괴롭히자 비가 내렸다는 중국 소동파의 고사를 따라 한 것이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비는 내리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밖에도 1600번이 넘는 기우제가 등장한다. 물론 효과는 없었지만, 농업을 근본으로 삼은 조선에서 비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최근 한반도가 아무리 가뭄에 시달려도 도마뱀을 괴롭히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 과학자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많다. 과학의 힘으로 원하는 때에 필요한 만큼 비가 내리도록 하는 인공 강우(降雨) 기술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과학자들이 레인메이커(rainmaker·비를 내리게 하는 인디언 주술사)가 된 것이다.

눈과 비 만들 구름씨를 뿌려라

1946년 11월 13일 소형 비행기 한 대가 미국 뉴욕 제네타디 비행장에서 이륙했다. 비행기에는 잘게 분쇄한 드라이아이스 1.35㎏이 실려 있었다. 동쪽으로 날아간 비행기는 구름떼를 발견하자 드라이아이스를 구름에 던졌다. 5분 뒤 구름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최초로 사람의 힘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빈센트 섀퍼 박사는 실험 중에 안개로 가득 찬 냉장고에 드라이아이스 파편을 떨어뜨리면 작은 얼음 결정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공 강우의 원리를 생각해냈다.

구름이 비가 되기 위해서는 구름을 구성하는 물이나 얼음 알갱이에 작용하는 중력이 부력보다 커야 한다. 아주 작은 구름 입자는 밑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에 비해 대기 흐름 등에 의한 부력이 더 크기 때문에 공중에 뜬 채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 일반적으로 구름 입자 100만개 이상이 합쳐져야 중력이 부력보다 커진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구름 입자는 잘 합쳐지지 않는다. 인공 강우는 바로 이 구름 입자가 잘 합쳐지도록 중심이 되는 구름씨(Cloud seeds)를 넣어주는 과정이다.

고체 이산화탄소인 드라이아이스는 온도가 섭씨 영하 79도 이하이다. 드라이아이스를 구름에 뿌리면 구름을 구성하는 수증기가 드라이아이스와 닿으면서 순식간에 작은 얼음 알갱이인 빙정(氷晶)이 된다. 이 빙정은 주변의 수증기를 끌어모으며 점점 커지고, 결국 무거워져 땅으로 떨어지는 눈이나 비가 된다. 드라이아이스가 구름을 비나 눈으로 만드는 구름씨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몇 년 뒤 대기과학자 버나드 보니것 박사는 요오드화은(AgI)이라는 또 다른 구름씨를 찾아냈다. 요오드화은을 태우면 아주 작은 입자가 생기는데, 이 결정 형태가 얼음과 유사해 얼음을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 이 입자를 구름에 뿌리면 구름 속 작은 얼음 알갱이가 달라붙으면서 덩치가 커져 비가 된다. 요오드화은은 현재까지 알려진 물질 중 가장 인공 강우 효과가 크다. 이 밖에 염화나트륨(NaCl), 염화칼륨(KCl), 요소 등 물을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는 화학물질도 구름씨로 쓸 수 있다.

로켓·미사일에 드론까지 동원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13년도 한 해에만 29국이 인공 강우 실험을 진행했다. 가장 앞서 있는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성(省)마다 인공 강우 센터를 설치하고 거의 매년 인공 강우를 시도하고 있다. 비행기로 요오드화은을 뿌리는 것은 물론 로켓이나 미사일에 요오드화은을 탑재해 쏘아올린 뒤 구름 속에서 터트리는 방식도 사용한다. 일본은 댐에 물을 채우는 데 인공 강우를 이용한다. 구름이 댐 위를 지나갈 때에 맞춰 구름씨를 뿌리면 정확히 댐에만 물을 가득 채워놓고 가뭄에 대비할 수 있는 식이다. 인공 강우는 사막 일색인 중동의 날씨까지 바꾸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전 세계 과학자들을 동원해 지난 3년간 100차례에 이르는 인공 강우 실험을 진행했다. UAE 매체 내셔널은 "인공 강우 실험을 통해 연간 30% 이상 강우량 증가 효과를 보고 있다"면서 "잇따른 인공 강우 실험으로 UAE에서는 보기 드문 폭풍우와 벼락이 빈번해졌다"고 전했다.

최근 인공 강우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무인비행체 '드론'이다. 속도를 조절하기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드는 비행기에 비해 드론은 정확히 원하는 위치에 화학약품을 살포할 수 있고, 탑재 카메 라로 구름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네바다 무인시스템 연구소와 사막연구소는 지난 3월부터 지상 51㎞ 상공에 드론을 보낸 뒤 구름씨를 뿌리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 책임자인 애덤 와츠 박사는 "드론을 이용하면 비행기로 무차별적인 화학약품 살포를 하는 것에 비해 훨씬 효과적인 인공 강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30/20170630020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