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美 1140만가구, 숨만 쉬어도 월세가 소득 절반 갉아먹어"

Shawn Chase 2017. 8. 22. 00:57

함현일 美시비타스 애널리스트  


입력 : 2017.08.21 06:55 | 수정 : 2017.08.21 13:40


[함현일의 미국&부동산] 또 다른 주택 위기 신호, 임대료 급등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의 금융위기, 그 시작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의 파산이었다. 주택 가격 거품으로 인한 모기지(mortgage·주택담보대출) 부실이 금융 시장 빙하기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이런 금융위기의 교훈은 주택 대출 시장의 건전화를 불러왔다. 이제는 주택 가격의 20%는 낼 수 있고 신용 상태도 건강해야 집을 사기 위해 은행 문을 두드릴 수 있다. 그만큼 주택가격에 거품이 끼어들 가능성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주택 시장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이 위기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주거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주거비가 소득의 과반을 갉아먹는 집이 늘었다. 주택과 아파트 임대는 늘어나는데, 임대료가 급등해 소비 시장과 주택 시장의 동맥경화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제 주택 담보대출 시장이 아닌 주택 임대시장에서 부동산 시장의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미국 LA 할리우드 지역의 고급아파트 외부에 임대를 알리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조선일보 DB

■“140만 가구가 소득 50% 이상 월세로 지출”

보통 미국에서 주택이나 아파트를 임대하려면 소득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월 임대료가 소득의 절반을 넘는다면 임대가 거절될 확률이 높다. 보통 전문가들은 소득의 30% 미만을 주택 비용으로 소비하라고 조언한다. 이는 모기지 월 상환액이나 월세 모두에 적용되는 법칙이다. 그런데 최근 소득의 30% 이상을 주택 임대료로 지출하는 미국인이 크게 늘었다.

하버드주택연구센터가 발표한 임대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주택을 소유하지 않고 임차하는 가구는 4300만에 이른다. 이는 2005년 3400만 가구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모든 미국 가구의 37%에 해당한다. 1960년 중반 이후 가장 많다. 임대 가구 증가와 함께 소득 대비 30% 이상을 임대료로 내는 경우도 2001년 1480만가구에서 2014년 2130만가구로 44% 급증했다. 이 중 소득의 50% 이상을 임대료로 지불하는 경우도 2001년 750만가구에서 2014년 1140만가구로 늘었다.

■임대료는 7% 상승, 소득은 9% 하락

문제는 이런 트렌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임금 증가 속도보다 빠른 임대료 상승, 수요 증가에 따른 임대아파트 공실률 저하 등이 그 이유다. 하버드주택연구센터에 따르면 2001~2014년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임대료는 7% 상승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가구당 수입은 오히려 9% 떨어졌다. 임차 수요가 늘면서 미국 내 평균 공실률은 30년래(來) 최저다. 빈방이 없다보니 임대료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 내 평균적인 아파트 월 임대료의 중간값은 1372달러다. 2012년에 비해 26%나 오른 것이다.

미국 뉴욕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도심 주상복합 아파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뉴욕의 고급 아파트 가격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

아파트 등 주택 건설이 늘고 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땅값 상승 등으로 새롭게 공급되는 아파트의 경우 고소득자를 타깃으로 높은 임대료를 책정해 집값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텍사스주 달라스에 거주하는 필자도 경험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아파트 임대료가 급등했다. 2~3년 전 필자가 거주하는 주변 동네에서 1000달러면 방 2개짜리 아파트를 임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1300달러는 내야 한다. 새로 지은 아파트는 1600달러를 훌쩍 넘는다. 만약 연봉 4만6000 달러를 받는 직장인이 이런 아파트에 산다면 세금을 제하고 월급의 절반을 월세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식료품·의료비 지출도 덩달아 줄어

소득 대비 임대료 지출이 늘다 보니 뻔한 가계 재정에서 다른 지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버드주택연구센터에 따르면 소득대비 50% 이상 주택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는 가구의 경우 식료품에 38%, 의료 서비스에 55%를 더 적게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결국 중산층 붕괴로 이어질 수 있고, 소비 감소로 인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사실 임차 수요 증가는 2008년 금융위기가 주원인이었다. 모기지를 제때 상환하지 못하고 주택을 은행에 저당 잡히면서 임대 아파트로 내몰린 사람이 적지 않다. 또 당시에 높아진 은행 문턱으로 모기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크게 줄어든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금융위기로 주택을 잃은 사람들이 이제 아파트 임대료 증가로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아직 심각한 것은 아니다. 최근 늘어난 금융 시장의 유동성과 경제 회복 분위기가 위기 상황에 놓인 주택 임대 가구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