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알아보니]한국 여성 골퍼들이 LPGA 휩쓰는 이유?

Shawn Chase 2017. 8. 14. 02:06
수정2017-08-13 10:34:59

우승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는 김인경 선수

우승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는 김인경 선수

김인경 선수가 지난 8월 7일 2017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올 시즌 LPGA 선수 중 가장 먼저 3승을 달성했다. 올해 한국선수들은 LPGA(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 투어 22개 대회에서 12번 우승했다. 유소연(ANA인스퍼레이션), 박성현(US여자오픈)에 이어 김인경까지 시즌 4개의 메이저 타이틀 가운데 3개를 한국선수들이 가져오며 다시 한 번 한국 여성 골프 선수들의 저력을 세계에 알렸다. 한국 선수들은 1988년 구옥희 선수의 우승을 필두로 2011년 최나연 선수까지 LPGA 투어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일찍이 해외 언론은 한국 여성 골퍼들의 우승 비결로 성실함, 정신력, 가족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젓가락으로 상징되는 한국인 특유의 손재주 등을 꼽아왔다. ‘그렇다면 남자선수들은?’이라는 의문에 대해 수년전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한 박사는 “외국 여자선수들보다 강도 높은 스파르타 훈련과 남존여비 사상으로 억압된 한국여성의 내면에 자리 잡은 ‘한’이 조화를 이루면서 엄청난 파워와 정신력이 분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박세리 선수가 워터해저드에 빠진 공을 살리기 위해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린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언니의 감격스러운 승리에 자극을 받아 고사리손으로 골프채를 잡았던 소녀들이 지금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체육학회지>에 게재된 <한국 여자프로골프선수의 LPGA 투어 성공요인>(임진택·임수원·권기남)을 참고해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의 성공 노하우를 다시 확인해봤다.


■강인한 정신력

한국 여성 프로 골프 선수들의 강점으로 완벽한 스윙자세를 꼽는다. 이는 어린 나이에 골프에 입문해 치열한 훈련으로 갈고 닦은 결과다. 다수의 골프 전문가들은 한국 선수들의 경우 골프에 입문하는 계기부터 외국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외국 선수들은 취미로 입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한국 선수들은 애초부터 프로 세계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뛰어들기 때문에 강한 집념을 갖는다는 것이다.

일본 JLPGA에 진출해 골프계의 한류스타로 통하는 이보미 선수도 <레이디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정신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기 샷을 믿으면 돼요. 하느님도 보이지 않지만 믿잖아요? 그런 것처럼 일어나지 않는 상황도 믿고 해야 하는 게 골프예요.”


■세리키즈의 성장

‘세리 키즈’와 함께 골프계의 전설이 된 박세리 선수.

‘세리 키즈’와 함께 골프계의 전설이 된 박세리 선수.

미국 ABC의 다큐멘터리 ‘한국의 우수함(SOUTH KOREA FOCUSED on EXCELLENCE)’은 1998년 US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펼치며 극적 우승을 이끈 박세리 선수의 일화를 다루며 “박세리의 성공만큼 그녀가 한국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고 기술했다. 박세리는 당시 외환위기로 위축되어 있던 국민들에게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은 동시에 ‘세계적인 골프 선수’가 실현가능한 꿈임을 보여줬다. 1998년 이후, 소녀 골프 선수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88년 전후로 태어나 박세리 선수를 롤모델로 삼아 골프를 익히고 2008년 전후로 한국은 물론, 일본·유럽·미국 등 세계무대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자 선수들을 ‘세리키즈’라 부른다. 박인비, 최나연, 신지애, 유소연 등의 대표주자로 그 세대가 지금의 LPGA 우승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강력한 공동체 의식

‘세리 언니’, ‘연아 언니’ 등 닮고 싶은 선배들의 충고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에게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사교적인 문화를 중시하는 LPGA 투어에서는 ‘언니 문화’가 우리라는 의식을 강화시키고 국가 정체성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친다는 것이 골프 관계자의 해석이다. 한국 특유의 공동체 의식은 외국에서도 ‘우리’라는 의식을 강화시키고 서로 간에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여기에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이 한국 여성 골프의 성공요인으로 작용한다.


■든든한 ‘골프 대디’

미국에서 자식을 축구선수로 성공시키기 위해 뒷바라지 하는 ‘사커맘’에 빗대 골프 선수 자녀의 코치 겸 운전사, 매니저를 자청하는 아빠를 ‘골프 대디’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 여자 프로 골프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 아버지’가 주목받았다. 초창기에는 그 시각이 곱지만은 않았다. 한국 아버지들이 경기 결과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경기 진행에 방해가 되는 코치를 하거나, 다른 선수들 앞에서 딸을 혼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 부모들의 자녀 교육에 쏟아 붓는 집중적인 투자와 집념은 딸들의 좋은 성적을 이끌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선수들의 LPGA 선전의 숨은 공로자로 열성적인 부모를 꼽기도 했다.


■조기 유학의 효과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여자 커리어 그랜드 슬램 챔피언이 된 박인비 선수.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여자 커리어 그랜드 슬램 챔피언이 된 박인비 선수.

해외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영어로 당당하게 우승소감을 밝히는 선수들을 보는 것도 국민들에게는 기쁨이다. LPGA 투어를 목표로 세운 어린 선수들의 경우 현지 적응을 위해 조기유학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박지은, 박인비, 김인경 등이 일찌감치 미국으로 떠나 성공을 준비한 케이스. 스폰서들은 선수의 현지 적응을 위해 영어교사를 지원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 선수들은 기본기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이는 입문 초기부터 정확한 스윙 자세를 익히는 문화에서 비롯된다. 취미로 골프를 먼저 접하는 외국의 경우 소질을 보이면‘선수용’ 자세로 고쳐나가는 것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대회를 통한 다양한 경험 축적

실전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한다. ‘필드 경험’을 강조하는 이유다. 국내에서 1년간 열리는 학생 골프대회는 20여개에 달한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주니어 시절부터 많은 대회에 출전하는 덕분에 자연스럽게 기량이 향상된다. 박세리, 김미현, 한희원, 장정 등이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기 경험을 쌓아 아마추어 시절 태극마크를 달았다. 스타급 선수들의 출전이 이어지며 프로 골프 경기의 시청률도 올랐다. 이는 국내 프로 골프대회 양적 증가로 이어졌다. 총 상금 규모가 늘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스타 선수들을 LPGA에 진출시키며 미국, 일본, 유럽, 호주와 더불어 세계 5대 투어 대열에 올랐다. KLPGA에서 기량을 갈고 닦아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구조적인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

골프 선수들 사이에서는 “국제대회 금메달보다 태극마크를 따는 게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선수층이 두터워진 덕분이다. 협회 차원에서 주니어육성시스템과 국가대표 발굴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연계시켰다. 국가대표가 되면 1년에 150일 이상의 합숙 등 각종 훈련을 거쳐야 한다. 최나연 선수는 “골프는 실수를 줄이는 게임이라서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 된다”며 “어떤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습을 해서 감각과 대처 능력을 익힐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골프아카데미 시장이 확대되어 선진국의 교습 방법이 도입되며 선수들의 기량을 높일 수 있게 된 것도 한국 선수들의 우승 비결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