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여성의 아름다움? 나이보다 스타일이죠”

Shawn Chase 2017. 6. 18. 13:03

모델 일이 지루해 디자이너로 전업하여
29세에 자기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어 낸 그녀,
바로 바네사 브루노를 만났다.

입력 : 2017.06.07 10:28

[Table with] 佛 패션 디자이너 바네사 브루노
 

바네사 브루노(50)는 과연 포토제닉했다. 자기 이름을 딴 여성복 브랜드의 설립자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그는 소싯적 모델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할 시간이 흘렀어도 몸은 기억하는 것일까. 카메라 셔터가 터질 때마다 표정과 손짓, 고개의 각도를 조금씩 바꾸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사진을 보여달라고 요청해 틈틈이 자기 표정을 확인했고 포즈를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사진기자가 마네킹 옆에 걸터앉아달라고 했을 땐 “(마네킹과) 똑같은 자세로 앉을까요?” 묻더니 이내 “자연스러운 게 좋다”며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았다.

바네사 브루노는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프렌치 시크’(french chic) 스타일의 대표 격인 브랜드다. 배타적인 럭셔리(luxury)보다 합리적 가격대를 지향하는 컨템퍼러리(contemporary)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최근 아시아 시장 점검차 한국을 찾은 그를 서울 한 백화점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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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사진을 찍던 바네사 브루노가“이건 어떨까요”하면서 손을 뻗어 옷걸이 기둥을 살짝 잡았다. “요즘은 디자이너와 경영자라는 ‘2개의 모자’를 번갈아 쓰면서 산다”는 그였지만, 예전 모델 시절 몸에 밴 습관이 절로 나오는 듯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여성의 아름다움, 나이는 중요치 않아
―사람들이 브랜드는 아는데 ‘인간’ 바네사 브루노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게 느꼈다면 커뮤니케이션에 더 신경 써야겠다. 신비주의는 아니다. 하지만 옷을 팔기 위해 과장된 쇼나 마케팅을 하는 쪽보다는 자연스러운 게 좋다. 디자인도 자연스러움이 중요한 것처럼.”

―디자인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 아이템을 꼽자면.
“레이스가 들어간 블라우스. 리넨 같은 천연 소재를 쓰고, 활동하기 편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드러내게 한다. 아주 스키니하게 만드는 건 별로다. 여자 옷이지만 어딘가 남성복의 셔츠 같은 느낌도 섞여 있다.”
오늘의 바네사 브루노를 만든 효자 상품으로는 보통 ‘카바(cabas) 백’이 꼽힌다. 캔버스나 밀짚 소재의 커다란 바구니처럼 생긴 가방으로, 전 세계에서 3분에 하나씩 팔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람들은 카바 백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젊은 엄마로서 필요를 느꼈다. 딸이 태어나면서 이것저것 넣어 다닐 큰 가방이 필요해졌다. 카바 백 자체는 프랑스에 옛날부터 있던 스타일이다. 여기에 처음으로 스팽글(반짝이 장식)을 넣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아이디어가 히트를 치면서 바네사 브루노의 아이콘이 됐다.”

―디자인할 때 어느 정도 연령대 여성들을 염두에 두나.
“30대 이상 성숙한 여성들이다.”

―패션 브랜드들은 보통 젊음을 강조하지 않나.
“여성의 아름다움을 나이로 규정하는 것, 젊은 여성은 아름답고 나이 든 여성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나이보다 취향과 스타일이 중요하다.”

(왼쪽부터)딸의 이름을 딴 가방‘룬 백’. 남자 셔츠 느낌이 섞인 블라우스./ 바네사 브루노

패션을 보며 자란 아이, 모델을 거쳐 디자이너로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나.
“어머니는 모델이었고 아버지는 의류 브랜드 ‘카샤렐(Cacharel)’의 경영자였다. 어려서부터 패션쇼를 봤고 백스테이지까지 자연스럽게 드나들었다. 어린 시절을 패션계의 중심에서 보냈다.”

―첫 출발은 모델이었다.
“(약간 한숨 섞인 목소리로) 그랬다. 학생 때 시작해 7~8년 정도 일했다.”

―디자이너로 분야를 바꾼 이유는?
“모델은 지루했다. 무대에 잠깐 나가려고 한참 기다리니까. 그렇게 인내심이 많지 않았다.”

―디자인은 어떻게 배웠나.
“전문적으로 공부한 건 아니다. 옷을 수없이 입어보면서 각 브랜드 의상의 특징을 느끼고 패턴도 이해하게 됐다. 결국 현장에서 배운 셈이다.”

―1996년 스물아홉 살에 브랜드를 처음 론칭했다.
“20대 중반부터 프리랜서로 여러 브랜드의 디자인을 했다. 저녁에 집에 오면 틈틈이 내 것도 해보고…. 그렇게 돈을 모아 브랜드를 만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직원도 없이 나 혼자였다.”

―패션 본고장이라는 파리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성공시키겠다는 강렬한 열정이 있었다. 운도 좋았고. 주변에 부모님을 비롯해 패션계 사람이 많아서 업계 돌아가는 사정을 배울 수 있었다. 패션쇼는 어떻게 진행되고 쇼룸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공장엔 어떻게 주문을 넣는지…. 업계 밖에선 잘 모르는 것들이다.”

모델 일 지루해 디자이너로‘전업’
29세에 자기 이름 딴 브랜드 만들어
3분에 하나씩 팔렸다는 카바 백,
딸 낳고 큰 가방이
필요해서 만든 것

브랜드와 함께 시작된 ‘워킹맘’의 삶
브랜드를 론칭한 1996년은 딸이 태어난 해이기도 했다. 카바 백과 함께 바네사브루노의 대표 상품으로 불리는 ‘룬(lune) 백’은 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딸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표정이 한결 더 밝아졌다.

―브랜드 출범과 동시에 ‘워킹맘’이 됐다.
“출산하고 딱 15일 쉬었다.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없을 땐 아빠가, 아빠도 없을 땐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를 돌봤다. 남편이나 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렇게 열심히 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딸은 어려서부터 엄마가 열심히 일하는 데 익숙해졌다.”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함께 여행을 많이 다니려고 노력했다. 해외 출장 갈 때도 자주 같이 다녔다.”

―딸도 패션계에 종사하나.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다. 중국어를 배우려고 내년 대만에 교환학생으로 갈 계획이다.”

―딸도 바네사 브루노의 옷을 좋아하나.
“그렇다고 믿고 있다(웃음).”

(왼쪽부터)브랜드의 대표 상품으로 꼽히는 ‘카바 백’. 라미(모시) 소재를 사용한 여름용 드레스./ 바네사 브루노

남자들, 여자 이름 달린 남성복 안 입어
브루노는 과거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페미니스트적인 면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직접 드러내진 않지만 그가 존경하고 영향받은 브랜드나 디자이너의 면면에서 그런 면모가 엿보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나.
“(잠시 생각하다가) 꼼 데 가르송에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셀린느의 디자이너 피비 필로, 프라다를 이끈 미우치아 프라다도 마찬가지다. 여성 디자이너들을 좋아한다.”
꼼 데 가르송을 만든 일본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는 검정과 무채색으로 점철된 그로테스크한 의상으로 기존의 ‘여성미’에 도전했다. 페미니스트 정치학도였던 미우치아 프라다 역시 밀리터리즘을 여성복 컬렉션에 도입하며 새로운 여성상을 그려냈다. 피비 필로는 남성적 요소를 가미한 여성복으로 “현대 여성이 옷 입는 방식을 재정립했다”는 평가를 받은 디자이너다.

―남성복에도 진출하겠다고 했었다.
“계획이 있었지만 실현하지 못했다. 여자 이름이 들어간 브랜드 옷을 입고 싶어 하지 않는 마초적인 분위기가 남자들 사이에 아직 있는 것 같다(웃음).”



바네사 브루노

1967 프랑스 파리 출생
1989 다니엘 에스테(DANIEL HECHTER)의 컬렉션 총괄 디자이너
1992 파리컬렉션 프레타포르테(기성복) 전시회에 첫 컬렉션 출품
1996 브랜드 바네사브루노(vanessabruno) 론칭
1997 세컨드 라인 아테(athe) 론칭
1998 액세서리 컬렉션 론칭
2003 바네사브루노 한국 진출
2004 란제리 컬렉션 론칭
2008 수영복 라인 론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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