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제2의 전성기' 영국 車산업, 브렉시트로 브레이크 걸리나

Shawn Chase 2017. 6. 8. 13:55

런던=장일현 특파원



입력 : 2017.06.07 03:00

[영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

유럽 경제 서서히 회복되면서 영국 車 생산량, 17년 만에 최고
해외 수출 중 56%가 유럽으로
영국의 이주민 제한 움직임에 메르켈 "車산업 대가 치를 것"
EU와 FTA 결별 땐 관세 폭탄… 영국 자동차 가격 경쟁력 잃어

런던=장일현 특파원
런던=장일현 특파원

"영국은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겁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매서웠다. 지난달 17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무역노조(勞組) 대표자회의 개막 연설에서 메르켈 총리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탈퇴)에 대해 던진 말이다.

영국은 지난해 6월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했고, 올해 EU(유럽연합)와 본격적인 탈퇴 협상을 앞두고 있다. 영국은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 이주민을 연 10만명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최우선 협상 과제로 내세운 반면,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EU 시민의 영국 이민에 제한을 가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그동안 몇 차례 원칙적 입장을 밝혔던 메르켈 총리도 이날은 작심한 듯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는 "영국이 자신의 탈퇴 입장을 결정하는 건 자유지만, EU도 이해관계가 위협을 받는다면 가만히 지켜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메르켈 총리가 지금까지 했던 말 중 가장 험악했다"고 했다.

메르켈 총리는 EU와 영국이 갈등을 빚을 경우,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을 산업으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지목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몰고 올 악영향을 논할 때 그 중심엔 자동차 산업이 있다"고 했다.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지난해 17년 만에 최고 생산을 기록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브렉시트로 갑작스러운 먹구름을 만난 꼴이 됐다.

◇영국 자동차 산업 "제2의 전성기"…2020년 200만대 돌파 목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20세기 중반까지 전성기를 달렸다. 버킹엄대학교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50년대 영국 자동차 생산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출은 세계 1위였다. 1972년 승용차 192만대 생산은 지금까지도 영국 내 역대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영국 굿우드의 롤스로이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는 모습.
제2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라는 먹구름을 만났다. 유럽 전역의 부품 기지를 활용해 경쟁력을 높인 영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사진은 영국 굿우드의 롤스로이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는 모습. /블룸버그

이후 미국과 독일,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이 기술·디자인·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시장을 장악하면서 영국 자동차 산업은 급격히 위축됐다. 생존 경쟁에서 밀리면서 외국 경쟁 업체에 매각되는 일도 속출했다. '미니'의 경우, 1994년 독일 BMW에 팔렸고, '재규어'는 1990년 미국 포드에 팔렸다가 2008년 인도의 타타모터스에 다시 매각됐다. '랜드로버'도 BMW(1994년)와 포드(2000년)를 거쳐 2008년 타타모터스에 넘어갔다. 2008년에 터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영국 자동차 산업에 최악의 시련기를 몰고 왔다. 영국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2009년 승용차 생산은 100만대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서서히 회복되자 영국 자동차 산업은 빠르게 반등했다. 승용차 생산은 2010년 127만대, 2013년 151만대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172만2000대를 기록했다. 영국 자동차산업협회(SMMT)는 "지난해 영국의 승용차 생산은 전년보다 8.5%나 늘었다"며 "이는 1999년 이후 17년 만에 최고"라고 말했다.

성장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SMMT 관계자는 "최근 자동차 생산이 계속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은 그동안 자동차 업계가 미래를 밝게 보고 꾸준하게 투자를 진행한 결과"라고 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금 같은 추세라면 승용차 생산은 오는 2020년 200만대를 돌파해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라고 했다.

◇유럽 시장이 성장 이끌어… 전체 수출의 56% 차지

영국의 승용차 생산 추이 외

영국 자동차 산업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동력은 수출이다. SMMT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에서 생산된 승용차 중 해외로 수출된 비중은 78.8%에 달했다. 자동차 10대를 생산하면 이 중 8대는 해외에 팔고 있다는 얘기다. SMMT 측은 "영국 승용차 생산 증가는 전적으로 해외 수요가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해외 수요 중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지난해 해외 수출 승용차 135만4216대 중 56%인 75만8680대가 유럽 지역으로 향했다. 미국으로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4.5%이었고, 이어 중국 6.5%, 터키 3.1%, 호주 2.5% 등이었다.

유럽 경제가 최근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영국 자동차 산업엔 호재로 작용했다. EU 28개 회원국의 GDP 성장률은 2014년 1.6%, 2015년 2.2%, 2016년 1.9%를 기록해 경기 침체에서 확실하게 벗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 1분기 성장률도 0.5%로 '따뜻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럽 경제 회생을 증명하는 여러 신호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며 "유럽이 지난 10년 동안 시달렸던 경제 위기에서 드디어 탈피하고 있다"고 했다.

유럽의 고질병으로 지적됐던 실업률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EU 공식 통계 기관인 유로스타트는 "지난 3월 EU 회원국 전체 평균 실업률은 7.8%로 2008년 12월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했다.

◇영국 차 부품 3200㎞ 거쳐 조달… 브렉시트 땐 위기 가능성

BMW의 소형차 브랜드 '미니(MINI)'는 지난해 21만대를 생산해 재규어 랜드로버(54만대)와 닛산 승용차(51만대)에 이어 영국 내 승용차 생산 랭킹 3위에 올랐다. 영국 일간 가디언 분석에 따르면, 엔진의 핵심 부품인 '크랭크축'의 경우, 미니의 최종 조립 라인에 도착하기까지 영국 해협을 3번 건너고, 총이동 거리는 2000마일(약 3200㎞)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조(cast)는 프랑스에서 만들고, 이후 영국 워릭셔에 있는 햄홀 공장에서 정형단계(shape)를 거친 뒤, 다시 독일 뮌헨으로 옮겨져 엔진에 장착된다. 이 엔진은 영국 옥스퍼드의 미니 공장으로 이동해 완성차에 탑재된다. 가디언은 "현재 영국 자동차 업체들이 국내에서 조달되는 부품을 사용하는 비중은 약 4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EU 지역 업체에서 부품을 받고 있다"며 "부품 조달 문제가 브렉시트 이후 영국 자동차 산업에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영국과 EU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못하고 결별하게 될 경우엔, 높은 관세 때문에 영국산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은 "브렉시트 이후 승용차에 10%의 관세가 부과된다면, 그건 곧 영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상실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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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6/2017060602202.html#csidxb08047d06decd629f7f8d89d76de89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