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김준희의 <중앙아시아 기행> 키르키즈스탄의 수도에 도착하다

Shawn Chase 2016. 7. 17. 12:51

[중앙아시아 여행기 26] 비쉬켁

06.02.24 11:20l최종 업데이트 06.02.24 11:21l


▲ 키르키즈스탄의 수도 비쉬켁의 모습



키르키즈스탄의 수도 비쉬켁은 작은 도시다. 키르키즈스탄이라는 나라의 전체 인구가 500만 명 정도이고 그 수도인 비쉬켁의 인구는 대략 60만 명이라고 한다. 키르키즈스탄의 면적은 한반도 전체 면적보다 조금 작은 편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넓이를 가진 땅덩이에 인구는 500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키르키즈스탄은 산악국가다. 우리나라에도 산이 많지만 키르키즈스탄하고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키르키즈스탄 국토의 80%가 해발 1500m 이상이고 그 중 40%가 3000m 이상이라고 하니, 이건 산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나라 자체가 하나의 산맥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키르키즈스탄을 가리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부른다. 산악국가이면서 자연경관이 빼어나 이런 명칭이 생겼을 것이다.

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의 국경을 넘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혹시라도 거주등록이나 다른 문제를 트집 잡지 않을까 내심 긴장했지만 국경 관리인은 여권과 출입국 카드를 한번 훑어보더니 출국도장을 찍어주었다.

알마티에서 비쉬켁으로 오는 길은 넓은 초원과 완만한 경사의 산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나는 비쉬켁으로 오면서부터 키르키즈스탄에 매력을 느꼈다. 중앙아시아가 가지고 있는 골치아픈 실크로드의 역사나 이슬람 유적과는 관계없이, 그냥 자연풍광을 여행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키르키즈스탄이 딱일 것이다.

비쉬켁에 도착해 시내를 헤메다가 중심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호텔을 찾았다. VIP 호텔이라는, 작지만 깨끗한 호텔에서 이틀을 묵기로 했다. 가격은 하루에 1200솜. 솜은 키르키즈스탄의 화폐단위인데 ×25하면 대충 우리 돈으로 계산할 수 있다. 나라를 옮겨다닐수록 점점 더 환율계산하기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거창한 타쉬켄트, 복잡한 알마티와는 달리 비쉬켁은 작고 조용하다. 왕복 8차선 도로도 별로 없고 알마티에서처럼 빵빵거리는 차도 없는 곳이다.

이런 비쉬켁의 중심가는 '츄이' 거리다. 츄이거리를 산책하듯 걷다보면 하루만에 비쉬켁의 중심부를 대강 둘러볼수 있다. 대통령 궁과 마나스 동상과 국기게양대와 백화점 등이 이 거리를 중심으로 모여있다. 난 지도를 들여다보며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거리에는 많은 학생들이 보였다. 특히 마나스 동상 앞의 거리에는 오전부터 많은 학생들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무리지어 있었다.

그리고 많은 노점상이 있다. 개비담배와 사탕을 놓고 파는 아주머니, 체중계를 놓고 한 번 이용할 때마다 1솜씩 받는 아주머니, 차가운 청량음료 한잔에 3솜씩 파는 상점, 바나나 한송이에 10솜을 받는 과일 상점 등 많은 노점이 있고 사진사들도 많이 있다.

어떻게 한국에 갈까? 키르키즈스탄은 여행의 마지막 나라이니까 이제 귀국준비를 해야한다. 비쉬켁에서 한국으로의 직항은 없다. 그렇다면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가서 알마티 직항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중국을 거쳐야 한다. 카자흐스탄에 다시 가고싶지는 않다. 그래서 난 중국으로 들어가 베이징을 거쳐 칭다오로 이동, 칭다오에서 배를 타고 귀국하기로 했다.

▲ 국기게양대(좌측)와 자유의 여신상
ⓒ 김준희
▲ 자유의 여신상
ⓒ 김준희

이렇게 마음을 정한 후에 시내를 둘러보았다. 국기 게양대 옆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다. 키르키즈스탄이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91년, 구소련 시절에는 이 광장에 레닌의 동상이 있었다고 한다. 독립을 하면서 레닌의 동상은 박물관으로 들어가고 대신에 이 여신상이 지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옆에 있는 국기게양대에는 붉은 키르키즈스탄의 국기가 있고 두 명의 키르키즈스탄 군인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마나스 동상이 나온다. '마나스'란 인물은 '마나스 서사시'로 유명한 전설속의 인물이다. 예니세이 강 부근에 흩어져 살던 키르키즈 인들을 규합, 위구르 족과 싸우면서 현재의 영토에 정착할때까지 키르키즈인들을 이끌던 인물이다.

마나스와 그의 아들, 손자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마나스 서사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아미르 티무르를 떠받들 듯 키르키즈스탄에서는 마나스를 자기나라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 마나스 서사시는 키르키즈스탄 초등학교 교재에서도 취급될 정도라고 한다.

▲ 마나스(가운데)와 그 부하의 동상
ⓒ 김준희
▲ 마나스 동상
ⓒ 김준희

백화점까지 둘러본 후에 시내에 있는 한 여행사로 향했다. 오다가 본 몇개의 여행사 중에서 가장 그럴 듯해 보이는 '키르키즈여행'에 들어가자 영어를 잘하는 한 직원이 나를 맞아주었다. 이 곳을 통해 중국비자를 받고 항공권을 예약해야 한다. 중국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서 카드로 결제를 하고 여권을 맡겼다. 중국비자를 받는데는 일주일이 걸린다.

"여권없이 키르키즈스탄 여행할수 있어요?"
"어디 여행할 건데요?"
"탈라스하고 이식쿨 호수요"

여행사의 여직원은 많은 비자가 붙어있는 내 여권을 한장한장 넘겨보았다.

"탈라스는 갈때 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어야 하니까 여권이 없으면 곤란해요. 국경에서 여권 검사를 하거든요"
"그럼 이식쿨 호수는요?"
"여권 복사해 가면 이식쿨 호수는 아무 문제 없어요"

어찌되었건 이제부터 일주일 간은 여권없이 복사본 만으로 여행하게 생겼다. 별문제야 없겠지만 그래도 좀 찜찜하기는 하다. 여기서 북경으로 가는 직항은 없단다. 비쉬켁-우루무치-북경 항공편이 일주일에 두번, 수요일 금요일에 있는데 세금 포함한 가격이 328 달러라고 한다. 예상보다 싼 가격이다. 일정을 좀 더 잡고 예약하기로 하고 난 다시 거리로 나왔다.

탈라스에 가는 것이 문제다. 카자흐스탄 국경을 통과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탈라스에는 꼭 가야만 한다. 좀 쉬운 방법이 없을까? 이 생각을 하면서 거리를 걷던 나에게 이번에도 행운이 찾아왔다.

▲ 비쉬켁의 중심가 츄이거리
ⓒ 김준희

"여행객이야?"

옆을 보니까 둥글둥글한 인상의 현지인이 나와 나란히 걸으며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응"
"어디에서 왔어?"
"한국에서"
"널 어디선가 본것 같아서"
"날 봤다고? 난 어제 여기에 도착했는데"
"비슷한 사람이랑 착각했나봐"

선한 인상의 이 사람에게는 웬지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물었다.

"비쉬켁에 살아?"
"아니. 탈라스에 살고 있어"

순간적으로 잘못들은 것이 아닌가 느껴졌다.

"탈라스? 탈라스에 산다고?"
"응. 왜?"
"아니 그냥. 탈라스에 가고 싶거든"
"내가 내일 오전에 탈라스로 돌아갈건데. 괜찮으면 나랑 같이 가자"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좋은 행운이다. 내가 다시 물었다.

"비쉬켁에는 일 때문에 온거야?"
"응. 일 때문에 며칠 출장온거야"
"여기서 탈라스까지 가려면 몇시간이나 걸려?"
"한 4-5시간 정도?"
"카자흐스탄 국경을 통과한다면서?"
"아니 꼭 그렇지도 않아. 그냥 키르키즈스탄 영토만 거쳐서 갈수도 있어"

그는 나에게 자기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유럽과 연관된 정보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는 28살의 '에르킨'이라는 이름의 친구다. 러시아어와 키르키즈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독일어까지 구사한다는 에르킨은 나와 함께 길을 걸으면서 얘기했다.

내가 지금 묵고 있는 숙소가 비싸다고 하자 그는 싼 숙소만 고르지말고 안전한 곳을 찾으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밤에는 위험하니까 돌아다니지 말고 안전한 숙소에만 있으라면서 나에게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난 에르킨과 동행하기로 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다.






주의. 이곳은 여행자제 국가·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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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 수도는 비슈케크.

상하이 협력기구, 옛 소련 구성국 간의 정치/경제 협력 단체 독립국가연합, 유라시아 연합 회원국이기도 하다.

국명의 현행 표준 표기는 러시아어 표기법을 따라 '키르기스스탄'이지만, 국명이 다소 독특하기 때문에 키르기즈스탄, 키르키스스탄, 키르키즈스탄, 심지어는 키르기리스탄(...) 등으로 와전되기도 한다. 키르기스(키르기스어로는 '크르그즈')라는 단어의 유래는 고대 튀르크어로 '40여 부족들' 또는 '40명의 여인들'같은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에서는 이 나라를 '키르기스스탄' 보다는 '키르기지야(Киргизия)'이라고 많이 표기한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결정된 러시아어 표준 표기법에서도 표준으로는 이것을 삼고 있을 정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 -스탄이 붙는 국가들이 모두 원형대로 쓰이는 --반면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키르기지야, 투르크메니야라는 다소 이질적인 형태가 표준이 되었다. 위키백과 러시아어판에도 이렇게 등록돼있는 상황.[1] ы가 и가 된 건 러시아어에서 к를 포함해 몇몇 자음 뒤에 ы가 올 수 없기 때문에[2] 그렇게 된 것이고, 거기에 러시아어의 일반적인 국명 어미인 -ия를 붙인 형태로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제는 러시아의 주류 언론들에서도 현지 표기를 존중(?)하여 Кыргызстан으로 말하는 경우도 점차 늘고는 있다. 주로 젊은 층들은 원어대로 읽고 쓰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특히 외래어의 경우 к 뒤에 ы가 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

국기는 유목민족인 키르기스인의 전통적인 이동식 천막 유르트 맨 위 가운데에 뚫린 환기구, 냉방 역할을 하는 구멍의 모습을 본 딴 것이다. 붉은 배경 가운데에 있는 심볼은 태양과 다민족을 의미한다. 한국인에게 유목민족의 천막은 몽골 쪽이 그나마 더 유명하고 거기에도 위쪽 같은 위치에 구멍이 있지만 키르기스인의 유르트의 구멍과는 모양이 약간 다르다.

현 키르기스스탄에 위치한 탈라스(Талас)는 세계사 교육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건인 당나라압바스 왕조 간의 탈라스 전투로도 유명하다.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재로 골머리를 썩고 있지 않는 나라이다. 물론 민주주의가 갖추어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주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이 세계 민주주의, 언론과 국민의 자유 수준이 세계 최악을 빠져 나오지 않는 것에 비하면 한참 낫다. [3]

2. 역사[편집]

키르기스인의 역사는 당연히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들은 기원전부터 예니세이 강 상류, 삼림지대의 수렵민 집단으로 생활해 왔다. 본래는 이란계 유목민, 정확히는 사카계 유목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5세기 말이나 6세기 초부터 도시와 국가를 형성해왔으며 위구르 제국을 멸망시키고 중국의 기록에도 그 이름이 등장한다. 오랫동안 튀르크흉노, 돌궐 등의 여러 민족의 지배 하에 놓이면서 6세기 무렵부터 일찍이 튀르크화되었다. 참고로, 후일 몽골 제국을 세우는 칭기즈 칸보르지긴 씨족이 본디 키르기스부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19세기에 들면서 동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러시아 제국,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소련의 지배에 들어가게 되고 1937년 대원쑤 스탈린에 의하여 민족주의 인사 137명이 학살당해 비밀리에 매장되는 일[4]이 있었다역시 인간백정 도대체 학살을 얼마나 한거야.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후 2005년 튤립 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 혁명으로 아스카르 아카예프 독재정권이 축출되고 쿠르만베크 바키예프가 대통령이 된다. 2008년 지진이 일어나 69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 당시 보여진 정부의 무능한 대비와 여전히 비리가 넘치는 현실. 그리고 우즈베크인들이 대거 와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여론이 분노하였다.

결국 2010년 4월 7일, 바키예프의 오른팔이었던 로자 오툰바예바의 주도 하에 다시 민중봉기가 일어나 열두 시간 만에(...) 바키예프 정부가 뒤집어지고 대통령은 망명했다. 더불어 두 달 후인 6월, 남부 지방 대다수 키르기스인들이 우즈베크인들을 마구 집단공격하면서 우즈베키스탄과 갈등이 크게 벌어졌다.

2010년혁명이후 헌법 개정을 통하여 중앙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의원 내각제를 도입하였다. 여성 임시 대통령 로자 오툰바예바는 이후 각종 평화상을 수상한다.

2011년 12월 1일, 중앙아시아 최초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대통령 선거로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명예직이며, 실질적인 수장은 총리가 행정 관련 업무와 모든 권한의 위임 등을 차지하고 있으며, 내각의 실질적인 리더이다.

2015년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정부 수반은 2015년 5월 1일에 총선으로 취임한 테미르 사리예프 총리로, 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2016년 4월 13일 총선에서 독립당과 스럼베이 진베코프가 이김으로써 정권 이양을 했으며 그는 前 총리의 실권을 그대로 물려 받아 실질적인 의회의 수장이 되었다.

3. 자연[편집]

고산이 많고 사막이 없는 천혜 환경을 지니고 있어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 불린다.[5]


이 나라에 있는 최대의 호수인 이식쿨(이스쿨) 호수(Ысык-Көл, 따뜻한 호수)[6]는 소련 시대에는 공산당 간부들도 휴양지로 찾아올 정도로 명성 높은 곳이었고, 지금도 거의 오염되지 않았다고 하니 정치상황만 안정되고 홍보만 되면 관광지로 각광받을 수 있을 듯 하다. 이식쿨 호수는 세계 2위의 산정호수[7]로, 길이 180km 폭 70km로 바다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넓으나, 뜨거운 태양볕 아래 수평선 넘어 보이는 만년설 산봉우리(호수가 해발 1600m, 수심 700m)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평범한 바다나 호수에서 볼 수 없는 경이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바다보다 5배 약한 소금기를 함유하고 있어 수영하기에도 좋고 피부병 치료에 탁월한 약수로 알려져 있어 중앙아시아인이나 러시아인들은 1-2달씩 작정하고 와서 쉬다 간단다. 또한 이 나라 최고봉 젱이시 초쿠수(Жеңиш чокусу, 승리봉)는 7439m의 흠좀무한 높이이다.

최고봉 젱이시 초쿠수(포베다 산) 이외에도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7,134m높이의 이븐 시나 봉(레닌 봉)도 있다.

4. 경제[편집]

자원은 별다른 게 없으나 물이 많은 지리적 이점으로 반대로 물이 부족한 이웃 자원부국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에게 물을 수출하면서 석유와 가스 자원을 들여오고 있다. 우즈베크인 추방 및 민족 갈등으로 우즈베키스탄과 외교적인 갈등이 노골화되고 있지만, 이 나라에 대한 물 수출 수요량이 워낙 커서 우즈베키스탄도 함부로 이 나라를 견제하지 못한다고.[8]

5. 민족[편집]

키르기스인에 이어 우즈베크계와 소수의 러시아인[9]그런데 수도인 비슈케크에는 은근히 좀 있더라, 중국계 무슬림인 둥간인(후이족)이 대거 살고 있지만, 철저하게 이슬람을 믿으며 중국과 거리를 두기에 화교들을 견제하는 편이다. 이들은 다수 키르기스인들과 그럭저럭 평화롭게 사는 편이다. 90년대 중국이 이들을 중국인이라면서 끌어들여 국경분쟁에서 유리한 영향력을 가지려고 시도했으나 이들은 우린 중국어도 모른다며 선을 그어버렸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이들은 다수가 19세기에 걸쳐 수 차례에 터졌으며, 매번 청나라 황실의 인종청소에 가까운 가혹한 탄압을 받아 도망쳐 온 둥간 혁명 당시 난민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처지였던 준가르 인들이 청나라의 탄압과 학살로 결국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것처럼 이들도 혹독하게 시달려왔기에 중국에 대한 반응은 대대로 증오로 이어왔으니 당연하다. 한족이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만주족의 청나라를 중국사로 받아들인 만큼 청나라의 증오어린 역사에 대하여 이들은 차라리 지금 키르기스스탄인으로 살아가는 게 훨씬 낫다. 우리 조상들을 죽이고 학대하던 놈들의 나라에서 무슨 염치로 중국인이라고 우릴 헛소리하냐며 이를 갈았고 지금도 중국과 사이는 아주 안 좋다. 한 한국인 여행가가 둥간인 유목민들이랑 친해져서 한 이야기에서 중국놈들이 와서 가끔 우리가 중국인이니 정체성을 가지라고(?)개소리를 하여 보란듯이 돌을 던져 혹 좀 만들어준 적도 있지요!라고 자랑하던 적도 있었으니 말 다했다.

러시아인은 소련 독립 이후에 줄었다가 늘었다가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려인들도 제법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오래전에 강제로 끌려온 한국인들의 후손들이다. 대다수는 한국 성을 유지하고 있고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지만, 조상들이 어떻게해서 키르기스스탄까지 왔는지는 잘 알지못한다. 당연히 한국어도 전혀할줄 모른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다 보니, 키르키즈스탄에서는 눈 파란 사람, 라면머리 사람 등 다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에 키르키즈스탄에서 생긴 건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러시아어를 쓰니까 신기하게 보는 해외 관광객도 많다. (키르키즈어는 키르키즈 사람들에게밖에 잘 듣지 못한다.) 키르키즈스탄에 있는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어를 고집하며 키르키즈어를 잘 배우려 하지 않는다. 키르키즈스탄에서 태어났지만 본토어를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런데 이건 다른 옛 소비에트 연방이던 나라에서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에스토니아나 몇몇 나라는 자국어 교육을 강화하고 러시아어를 쓰임새를 줄이려고 하여 거주 러시아인들이 반발하는 일도 벌어졌다.

6. 언어[편집]

독립 당시엔 키르기스어만 공용어로 정하다가 나중에 러시아어도 추가되면서 둘 다 공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많은 어린 학생들이 키르키즈어가 배우기가 귀찮다고 많이 배우지 않고, 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키르키즈 민족이면서 키르키즈어를 못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
키르키즈스탄에서는 러시아어, 키르키즈어 둘 중 아무 언어나 써도 대부분 사람들이 이해한다.
우즈베키스탄과 달리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특별한 억양없이 구사하는것처럼 키르키즈스탄 사람들이 쓰는 러시아어도 러시아 내에서의 사투리 같은 발음이 섞이지 않은 표준 러시아어다.

7. 문화[편집]

쾩뵈뤼(көк-бөрү)라고 불리는 민속스포츠가 유명하다. 카자흐어로는 쾩파르(көкпар), 페르시아어로는 부즈카쉬(بزکشی)라고 불리는데, 축구나 농구와 달리 선수들이 말을 타고 다니며 공 대신에 양이나 염소 시체를 잡고 던져서 상대편 구덩이에 골을 넣는 경기로 그 위상은 다른 구기종목을 능가할 정도다.

알라 카추라는 유구한 풍습이 전해져 오고 있다. 알라 카추라는 이름은 '붙잡아서 뛰어라'라는 뜻으로 합의 하에 여자를 납치해 결혼하는 풍습이다. 유목민 시절의 약탈혼 관습과 이슬람의 가부장적 의식을 배경으로 등장하였다.

키르기스스탄 '신부보쌈'으로도 유명한데 요즘에도 '신부보쌈'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1년에 결혼하는 수가 54,000쌍인데 이중 50%가 '신부보쌈'에 의한 것이라고 키르키즈정부에서 인정한바 있다(2014년).[10] 하지만 키르기스스탄 인구의 65%가 시골에서 산다.

중앙아시아에서는 그래도 민주주의가 발달한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라시아 연합을 통틀어 아르메니아와 함께 유이한 민주 국가다.

8. 외교 관계[편집]

2013년 1월에 중국인과 현지인들간에 충돌이 크게 벌어졌다. 중국인 4명이 현지 키르기스인이 자기네 핸드폰을 훔쳤다고 납치해서 감금하고 구타한 것. 이에 구타당한 현지인이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아버지가 왔으나 중국인들은 아버지도 구타하고 감금했다(...) 이후 경찰이 출동했으나 중국인들은 경찰도 구타해버렸다 고만해 미친놈들아 결국 경찰들에게 이들은 처맞고 구금당했으며 엄청난 벌금형을 처했다. 이에 중국에선 피해자답게 반발했으나 "경찰구타가 피해자냐?" 라는 키르기스스탄 측에게 데꿀멍. 러시아가 중재하여 이 4명은 석방되었지만 이들은 키르기스스탄 영구입국 금지를 당하여 그동안 키르기스스탄에서 자영업한걸 모두 잃었다.

한류 드라마와 영화가 어느정도 영향을 끼친덕에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다. 한 예로 드라마 '드림 하이'에 나오는 노래 '거위의 꿈'을 알고 있을 정도다.

한때 미군과 러시아군이 함께 주둔했던 기묘한 나라다(...). 미군의 마나스 공군 기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중요한 장소로 상주인원이 2만 명에 달했으나, 2014년 이후 러시아의 등쌀과 회유에 못 이긴 키르기스스탄 정부에 의해 폐쇄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8.1. 여행자제국 판정에 관한 반박[편집]

키르키스스탄은 현재 여행자제 판정을 받고 있는 상태인데 이는 다소 의문이 드는 판정일 수 있다. 치안이나 위생 등에서 문제가 많다는 소문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이는 편향적인 주장일 가능성이 있다.
키르키즈스탄 여러 곳을 직접 혼자서 다녀본 여행자에 따르면 여행자제 판정을 받을 만큼은 전혀 아니고, 기본적으로 다민족 국가이며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인식에 동양인들을 더 챙겨주기도 한다. 지역차에 따르겠지만, 마의 소굴까지는 아닌 모양이다. 가끔 시위가 있긴 하지만 그건 서울도 마찬가지잖아?

다만 키르키스스탄의 납치혼 악습인 알라 카추의 피해자 중에 여성 한국인이 있었으므로, 한국인 여성 방문객들은 이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중세시대 유럽 인구의 30~50%를 절멸시킨 흑사병이 아직도 발생하는 지역이다. 흑사병이 풍토병으로 자리잡고 있는 몇 안되는 지역중에 하나이며, 최근 2013년 발병 사례가 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8/27/0200000000AKR20130827167300095.HTML?input=1179m
현대의학의 힘으로 흑사병은 치료가능한 병이지만, 발병 후 즉각적으로 원인을 파악하고 항생제를 투여해야한다. 발병 후 빠르면 1~5일안에 사망에 이른다. 현지의 의료 환경을 고려할때 (시스템, 언어 장벽등) 외국인 여행자에게....가능할까?

8.2. 러시아와의 관계[편집]

소련해체부터 러시아와는 매우 우호적이며, 옆나라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처럼 키르기스스탄 젊은이들도 대부분이 독립할 나이가 되면 러시아에서 일자리를 찾길 원한다.[11] 다만, 소련의 지배때문에 반러감정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함정 그리고 유라시아 연합에 2015년 5월 1일에 가입했다.

8.3. 대한민국과의 관계[편집]

1992년 독립지위 승인에 따라 대한민국과는 그 해에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1997년 문화협정, 투자협정을 체결하였다.

2011년 흥행 1위를 차지한 자국영화 <구준표와 결혼하는 법>이란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류에 푹 빠진 소녀 주인공을 둘러싼 가벼운 코미디이지만 한국에 대하여 매우 우호적으로 나왔던 영화라고 한다.

한국 정부에서는 외국인 학생들을 선발하여 한국에서 국비 유학을 하게 해 주는 제도가 있다. 관련 시험(한국어능력시험)을 이웃 국가인 카자흐스탄에서 한꺼번에 치른다. 키르기스스탄 출신 지원자들은 대부분 여학생들로, 한국에 반드시 가야한다는 열망이나 절박함이 카자흐스탄지원자들을 압도한다고 한다. 키르기스스탄은 구소련국가중에서도 제일 가난한 나라중에 하나로 꼽히다 보니, 국비장학생으로 한국에 들어온 여학생들은 무슨수를 써서라도 한국남자와 국제결혼해서 한국에서 살겠다는 다짐으로 중무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키르기스로 귀국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카자흐스탄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당해 응시자중에 키르기스스탄 지원자가 많으면 '아 올해는 틀린건가'라고 생각할 정도라나(...) 는 설이 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우수한 학생을 데려와 공부시킨 뒤 돌려보내어 공무원이나 직장인으로 만들어 한국의 국익에 이바지하길 바라는 뜻으로 돈을 대어 주는 것이지만, 의도와는 달리 한국 노총각들을 구제하게 되었다.

2012년 7월 26일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관광산업 활성화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대한민국을 포함한 44개 국가에 대한 사증 면제 프로그램을 공포하고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국민은 비자 없이 최대 60일까지 체류할수 있다.

2013년 11월 19일 아탐바예프 대통령이 방한, 대한민국 국회를 방청했다. 높은 수준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배우겠다는 취지에서 방청했으나 전날 있었던 민주당 강기정 의원사건에 항의해 야당 의원들이 모두 퇴장하여 좀 난감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2013년 방한했던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해, 2015년부터 한국의 자동화된 선거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2015년 10월부터 실시되는 모든 공직 선거에 한국의 선거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5월 지방의회 보궐선거에서 시범적으로 한국의 광학 판독 개표기를 가동했고, 개표와 집계가 10분만에 완료되는 등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10월 실시되는 총선부터 모든 공직 선거에 한국의 선거 관리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지난 20여년간 투표 및 개표 시스템의 미비로 선거 과정의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던 탓에 부정선거 의혹과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만연했던 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선거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033387

9. 창작물에서의 키르기스스탄[편집]

맥스 브룩스좀비 아포칼립스 소설 세계대전Z에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좀비가 발견된다.

힛갤키르기스스탄 바운싱 신드롬이라는 노래가 올라갔다. 줄여서 KBS. 물론 키르기스스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옛날 KBS 스포츠 오프닝을 리믹스한 노래. 영상의 DJ는 티에스토.


유네스코 청정국가 지정, 키르키즈스탄 2박3일 지출 단돈 만원??

 




뜨거운호수라고 불리는 키르키즈스탄의 관광명소 이슈쿨부름 호수




유네스코에서 청정국가로 지정된 국가,

키르키즈스탄에서의 2박3일동안 지출예상액이 고작 만원이라니..




 

먼저 키르키즈스탄은 어떤나라일까..?  의문이 들것이다.
자 그럼 한번 알아보자.!!

중앙아시아대륙의 중앙부. 북위 39°-43°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언어는
키르키즈스탄어 혹은 러시아어를 쓰며 인구는 520만명 조금 못미치는 나라 키르키즈스탄 
국토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약17배인 198,500㎢ 이며 화페단위 솜(SOM)이며, 원화 1000원 기준시 48솜정도이다.
환율은 국내 상업은행에 대한 ‘솜’화 보유한도 지정 등 강력한 통화정책으로 2000년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2005.3월 민중소요사태 등에도 불구하고 $1당 48 som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키르키즈스탄의 1인당 GDP는 735달러로 2007년 기준 카자흐스탄 1인당 GDP인 6800달러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나, 낮은 인건비와 높은 노동생산력으로 제조업이나 농업분야 투자진출이
카자흐스탄 비해 상승조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비스텍 아이엔지에서 1천500만평 해외식량기지 건설하고 있으며, 독립이후 점진적인 발전을 거듭한 결과,
감자,식가공,원료생산 및 최종제품 주생산을 통한 안정된 GDP유지 및 4만7천평 은 가공공장설립 한국 수자원공사,
댐 건설,정부와 체결해서
유네스코에서 청정국가로 지정되는 쾌거로 이루었다.



또한 뜨거운호수라 불리는 이슈쿨부름 호수는
수면면적 6280 Km2 수심702 m 세계 5위로써 주요관광자원으로 쓰이고 있다.


분명히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국가임에 틀림 없지만, 그 그늘아래 엄청난 국채에 힘겨워하는
금융위기 국가중 하나라는 비극을 안고 있었다.
키르키즈스탄 교역수지 적자폭은 2007년에 들어 크게 증가했으며, 2008년 이후 적자폭이 더욱 더 상승하였습니다
.
2006년 대비 2007년 교역 적자가 40% 이상 증가했으며, 2008년은 약 25% 이상 증가한것으로 보입니다
.
키르키즈스탄의 교역적자의 원인으로는 국내 제조업 발달이 크게 저조한 데 따라 산업 채산성이
낮기 때문이죠.
또한, 2008년도 이후에는 전력문제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간접적 영향(카자흐스탄 금융
권 유동성 저하)으로
산업채산성이 크게 저하돼 수입의존도는 지속적으로 커져갔습니다.



결국 2007년 기준 키르키즈스탄 FDI는 75% 이상이 국제원조 자본투자 또는 금융대출로 국제 부채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 중 하나로 낙인되어 버렸고, 앙상한 가지위에 유네스코 지정 청정국가라는 무늬만 두른 경제위기 국가였던 것이다.
그렇게 경제위기가 근 3년동안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국가 경제지수에 따른 국가존엄성이 흐릿해지고, 고 인플랜으로 시급화 된 물가안정지수 조차 떨어지면서 사회전반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로인한 들쑥날쑥한 물가로 인해 기준이 될만한 지표가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호텔가격이 최고 300달러인 반면에 미니밴 대여는 겨우 80솜(3시간정도감),민박100솜(2500원)1인 기준, 식대4끼먹고80솜(2,000원) 즉, 2박3일 현지에 지출원화10,000원만 소요될수 있는 극과극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꾸준한 유랑의 아픔속에 겨우 정착해서 터전을 만들어가던 5만여명의 우리 고려인들의 생계에도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시대, 고향 연해주에도 마음대로 갈수없는 그들 의 또다른 터전 키르키즈스탄에서의 무거운 발걸음은 아직도 계속 된다.








                       다음은 현지에서 우리팀이 찍어온 화페사진이다
                                   
  금액에 따른 대략적인 물가정도를 파악해보자
                                      우리나라 돈 2만원만 가지고 나가면 키르키즈스탄 시장에서 
                                 한트렁크나 장볼수 있을만큼 물가가 국내비교 물가가 아주 싼 편이다.





1som 화페이며, 우리나라돈으로 약 21원 정도이다. 하지만 키르키즈스탄안에서는 200원의 가치를 한다.





5som 화페로 , 우리나라 돈으로 105원 정도이다.



10 som 화페이며, 우리나라 돈으로 210원 정도이다.





20 som 화페로, 우리나라 돈으로 420원 정도이며, 현지에서 식사한끼의 가치를 한다.





50 som 화페로, 우리나라 돈 1050원 정도이다.




100 som 화페로, 우리나라돈 2000원 정도이다.
그리고 현지에서 싸게는 2일동안 민박도 할수 있으며, 미니밴에 3시간동안 탑승할수 있는 가치를 한다.




500 som 화페로, 우리나라돈 10000원 정도이다. 현지에선 서양배를 3박스나 살수있는 가치가 있다.




1000 som 화페로써, 우리나라 돈 2만원 정도의 가치를 한다.
그리고 이 돈이면, 왠만한 현지 쇼핑문화 에서는 주름을 잡을수 있을정도로 큰 가치를 한다.